민주당 '언론중재법→망법 개정' 선회… '권력자 제외'는 반대

[언론계, 권력감시 위축 여전히 우려]
망법, 시민·플랫폼 이용자 등 포괄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 침해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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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언론만 타깃으로 하는 법 개정에 반대의사를 표한 후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허위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안 도입을 언론중재법 대신 정보통신망법(망법) 개정을 통해 추진하기로 선회했다. 그러나 악용 소지가 여전한데도 권력자의 징벌적 손배 청구 권한을 제외하란 언론계 요구는 계속 수용되지 않고 있다. 언론은 물론 대형 유튜버, 나아가 일반 시민과 플랫폼 이용자 전반을 포괄하는 법 성격상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도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16일부터 국회 앞에서 시민을 위한 언론중재법·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촉구하는 108배 투쟁을 시작했다. 언론노조는 앞서 8일부터는 용산 대통령실과 국회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정 속도전 중단을 촉구하는 현수막·피켓 시위도 벌이고 있다, /언론노조 제공

언론특위 간사인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15일 한국기자협회 등 4개 언론 현업단체 주최로 열린 ‘허위정보 배액배상 어떻게 봐야 하나’ 토론회에서 “언론중재법으로 바꿀 부분은 바꾸되 배액배상제는 망법으로 하자는 게 대통령 입장이고 (당도) 그렇게 조율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앞서 언론특위는 기성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액의 수배를 배상케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해왔는데 언론에 국한하지 않고 유튜브 등까지 포괄하는 망법으로 규율하겠다는 취지다.


11일 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언론만 타깃으로 하지 마라”, “(누구든) 악의를 갖고 일부러 가짜 정보를 만들어내거나 조작하면 아주 크게 배상하게 하자”, “일부러 그런 게 아니면 중대한 과실이라도 징벌 배상할 일은 아니다” 등 입장을 밝힌 후 개정 방향이 수정됐다. 당초 언론특위는 고의는 물론 중과실로 허위사실 등을 인용 보도만 해도 배액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는데 이후 ‘중과실’ 개념을 빼기로 했고, ‘몇 배’로 특정했던 배액 기준을 ‘몇 배까지’로 바꾸는 등 조율을 하고 있다.


대통령 발언 후 언론특위 행보는 외관상 한발 물러난 듯 보이지만 내용상 논란 소지는 여전하다. 기존 언론중재법과 망법 양쪽에서 배액배상 도입이 추진돼 온 만큼 언론으로선 ‘이중 규제’ 우려는 벗어났지만 망법 개정만으로도 큰 영향을 받는다. 모든 언론이 온라인 보도·콘텐츠를 내놓는 현실에서 망법을 통한 ‘전략적 봉쇄소송’은 여전히 가능한 일이어서다. 실제 망법에선 봉쇄소송 방지책(안티슬랩법) 도입이 거론되지만 당초 언론계가 혹평한 언론중재법의 ‘언론중재위 전치주의’, ‘중간판결’ 등 장치보다 미비하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이에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 이준형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은 “언론중재법의 방어수단을 우회해 언론 유튜브를 집중적으로 타격하는, 이를테면 권력자들의 우회 소송 가능성을 차단해야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망법이 규율하는 대상은 인터넷상 모든 정보이고, 신문만 찍는 매체 이런 곳이 아니라면 당연히 언론도 적용받는다”며 “망법은 기존에도 명예훼손 처벌규정을 지닌 특별법인데 여기 배액배상이 더해지는 변화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언론중재법에 배액배상제 신설을 추진할 당시 핵심적으로 제기됐던 우려가 여전한 만큼 언론계에선 지속 권력자에 대한 배액손배 청구 자격을 제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발사주 의혹’ 보도로 고발을 당했던 이재욱 MBC 기자는 이날 토론에서 “여러 건의 고소고발을 당했을 때 보도 대상은 유력 종합일간지 사주, 대선 후보, 대통령,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등 한 명 예외없이 권력자였다”고 했다. 박성호 MBC 기자(방송기자연합회장)는 “법원 가면 언론사가 전승하지 않았냐 하지만 (윤석열 정부 때) 무더기 제재를 당했고, 기자뿐 아니라 시사교양·라디오 PD들도 많은 고초를 겪었다. 이기긴 했지만 과정을 알아야 한다”며 “권력자의 압박은 언론에 명백하고 현존한 위협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검찰 수사를 받은 경험과 MBC ‘바이든-날리면’ 보도 사례를 든 김은지 시사IN 기자(한국기자협회 부회장)는 “이건 권력자의 성격, 선한 의지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의 힘에 대한 얘기다. 공론장에 주는 위축 효과를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지켜봐왔다. 당연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온 기관이 동원돼 갈등하고 에너지를 쓴 과정상 비용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노 의원은 이날 봉쇄소송을 당했다는 언론사 주장에 재판부가 ‘중간판결’을 해 소송을 끝낼 수 있는 제도, 법원의 봉쇄소송 판단 결과를 소를 제기한 권력자가 공표하게 하는 장치 등 대응책이 충분하다며 언론 위

축 주장에 “공인을 일률적으로 배제할 명분이 떨어져보인다”는 그간 입장을 고수했다.


무엇보다 망법상 배액배상제 도입은 기성 언론과 유튜버는 물론 플랫폼 이용자 전반을 대상으로 포괄한다는 점에서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를 안고 있다. 이런 우려에 노 의원은 유튜브 규율 대상 등과 관련해 ‘언론 성격에 부합’하고, ‘일정 구독자수 이상’이며, ‘제작물 성격과 업로드 주기·횟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기준을 설계 중이라 밝히기도 했다. ‘부정선거 음모론’ 등에 사회적 대응은 필요하지만 언론에 한정한 논의에서도 합의된 답을 내놓지 못한 제도가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고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언론 현업단체들도 누차 지적했지만 이는 법안 내용을 떠나 초안도 공개되지 못한 채 ‘9월 중 처리’란 속도전으로 진행되는 정치현실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진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이날 “중과실 제외 방침을 여기 와서 처음 들었다”면서 “한국 사회 언론·표현의 자유, 권력 감시 체계 전반을 논의하는 큰 틀의 제도 설계를 하는 중차대한 법안에 대한 논의를 라이브로 축구중계처럼 지금 듣고 있다. 과연 정상적인 상황인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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