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 발언 사과에... 박석호 기자 "대통령실 인식이 문제"
[홍철호 정무수석, 이틀 만에 입장]
대변인실 통해 "발언 부적절... 부산일보·언론 관계자에 사과"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매체도 지면 통해 일제히 비판
박 기자 "'무례' 발언, 대통령실 전반적 기류 반영된 듯"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나온 기자의 질문을 “무례하다”고 지적해 논란이 된 지 이틀 만에 사과했다. 홍 수석은 21일 대변인실을 통해 “정무수석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 부산일보 기자분과 언론 관계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홍 수석 개인의 실언이나 실수로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수석이 언급했던 박석호 부산일보 기자는 “전반적인 대통령실의 기류가 반영된 발언으로 보인다”면서 “개인적인 사과야 받아들일 수 있지만, 대통령실 전반이 가진 언론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돼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홍 수석은 지난 1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앞서 7일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 관련 질문을 받고 당시 대통령이 “두루뭉술하게 사과했다”고 지적한 박석호 기자를 언급하며 “대통령에 대한 무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이 사과했는데 마치 어린아이한테 부모가 하듯이 뭘 잘못했는데? 하는 태도는 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계는 즉각 반발했다. 박석호 기자는 20일 기자협회보에 “언론의 역할과 기자의 사회적 책임을 부정하는 발언”이라며 “이제 누가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실에 그런 질문을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지역기자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태도를 시정해야 한다는 것은 기자들에 대한 ‘눈치 주기’로, 지역기자단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라 규탄하며 “취재나 언론 활동을 약화시킬 수 있는 모든 발언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 부산일보지회도 성명을 내고 “기자가 국민을 대신해 정당한 질문을 던졌을 때 이를 무례하다고 규정하는 대통령실의 태도는 언론의 본질을 왜곡하고,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21일자 조간신문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홍 수석을 향해 “왕정시대의 정무수석인가”라고 질타했다. 동아는 대통령 사과의 구체적 내용을 물은 박 기자의 당시 질문이 “윤 대통령으로선 답하기 곤란했겠지만 국민 입장에선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면서 그런 질문을 한 기자를 지목해 무례하다고 한 것이야말로 “언론을 향한 겁박이자 언론과 국민에 대한 무례”라고 비판했다.
이어 “권력을 감시하는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묻고 권력은 답할 의무가 있다.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해외 정상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르윈스키 스캔들’ 질문 공세를 받았고, 고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에서 왜 사퇴 않느냐”는 질문에 시달렸지만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면서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이 세상에 없다”고 했던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 헬렌 토머스 전 UPI통신 기자의 말을 인용했다.
중앙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대통령도 기자회견장에서만큼은 언론의 취재원일 뿐”이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자가 대통령에게 질문하면 안 되는 어떤 성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존재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의 현실 인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홍 수석의 발언은 대통령실의 현실 인식이 얼마나 민심과 동떨어졌고, 시대착오적인지 보여준다”며 “앞으로는 기자들이 대통령 심기를 살펴 질문하란 말인가”라고 꼬집었다. 한국일보 또한 “국정쇄신 요구가 분출하는 엄중한 시기에 위기의식은커녕 여전히 민심과 괴리된 인식을 보이는 모습이 개탄스럽다”며 “이런 고압적 태도로 어떻게 대통령의 정무를 보좌한다는 건가”라고 했다.
부산일보는 “대통령실이 정당한 지적을 하는 언론에 대해 “무례하다”는 감정적 대응을 보인 것은 단순한 발언의 의미를 넘어서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며 “언론을 통제해 권력의 잘못을 덮고 국민의 눈과 귀까지 막겠다는 의도는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 정치부의 김승재 기자는 기자수첩에서 ‘무제한 회견’을 예고했던 대통령실이 “질문에 ‘예의’ 잣대를 들이댈 줄은 몰랐다”면서 이럴 거면 굳이 왜 회견을 했느냐고 물었다. 김 기자는 “당연한 국민적 의구심을 대신 묻는 기자가 예의 없다고 한다면 ‘불편한 질문은 받지 않겠다’ ‘언론의 비판과 견제를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며 “참모 한 명이 아니라 대통령실 전체의 언론관이 이렇다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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