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빈다’는 말이 이번에도 등장했다. SNL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와 국정감사장을 찾은 뉴진스 멤버 팜하니를 패러디했다가 논란이 일자 나온 말이다. 또다시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일, 쿠팡플레이 ‘SNL코리아 시즌6’ 김의성 편에서 논란은 시작됐다. 이날 방송에서 김의성씨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정인섭 사장으로 분했다. 정인섭 사장이 국회 환노위에 출석한 이유는 뭔가. 올해만 노동자 5명이 사망한 중대재해 사업장의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그런 정인섭 사장이 본인의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하니와 웃으며 셀카를 찍는 장면이 공개됐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논란이 커지자 정인섭 사장은 결국 사과해야 했다. 김의성씨는 실제보다 과장되게 정인섭 사장을 그려 정인섭 사장의 분별없던 행동, 그 본질을 꼬집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하니를 그린 방식에 있다. 이날 하니는 하이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하고 아티스트로서 정당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그렇지만 SNL이 주목한 하니는 ‘어눌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베트남계 호주인’에 머물렀다. 인종차별 논란이 일어난 까닭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패러디 역시 마찬가지다. SNL이 포착한 건, 눈을 거의 감은 채 어깨를 움츠린 채 팔짱을 낀 한강 작가의 외양에 있었다. 그렇다면, SNL이 놓친 건 무엇인가. 한강 작가의 작품세계와 척박한 출판업계 그리고 이런 잘못된 환경을 조성한 당사자들의 이율배반적 행태가 아니었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후, 서점가는 어느 때보다 활기를 찾은 모습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출판업계는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지내고 있다. 박보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이권카르텔” 발언 이후, 정부의 도서·출판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과 중소출판사 지원 예산은 물론, 도서문화 확산을 위한 예산까지 그야말로 씨가 말랐다. 연구개발(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때와 똑 닮았다.
출판업계가 이렇게 움츠러든 원인은 또 있다. ‘좌파’, ‘페미니스트’ 등의 여러 낙인이다. 한강 작가도 피해 가지 못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던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축전을 거부했다. 과거의 일만도 아니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인 ‘채식주의자’는 다수의 성평등 도서와 함께 청소년 유해물이라는 이유로 공공 및 학교 도서관에서 퇴출 중이다. 이런 환경에서 무슨 놈의 출판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출판업계를 얼어붙게 만든 당사자들은 떳떳하기만 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적 경사”라고 치하했고, 유인촌 장관은 “한국출판이 이룬 쾌거”라고 평했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경기도 내 학교 도서관에서 ‘채식주의자’의 퇴출과 관련해 “내 아이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고 옹호했다.
풍자에 성역이 있어선 안 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성역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풍자에도 정도는 존재한다. 국감장의 사진 한 장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화제성만 볼 게 아니라, 사건의 본질과 맥락을 봐야 한다. SNL의 패러디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을 패러디한 ‘양심고백’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포한 개인들이 명예훼손으로 수사 받는 상황에서 SNL이 오히려 더 잘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사건의 본질과 맥락이 사라진 풍자는 위험하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용기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 또한 본인의 책무를 방관한 채 개인의 노력으로 일군 성취에 숟가락만 얹고자 하는 이들을 더욱 득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비약이 아니다. 출판업계의 고사 위기에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이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하이브 사태에 정작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는 국회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풍자가 외면한 현실이다. 이렇게 불행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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