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감호 청소년 8명과 백두대간 종주… "걷기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

[기고] 김영주 중앙일보 기자

9월18일부터 10월18일까지 한 달간 지리산에서 태백산까지 백두대간 마루금(능선) 390km를 걸었다. 1~2월 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남진(南進)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시도한 백두대간 일시종주였다. 이번엔 살레시오청소년센터 중·고생 8명과 함께 걸었다. 가정법원으로부터 ‘6호 처분’을 받고 시설에서 6개월간 위탁감호 중인 아이들이다.
청소년 백두대간 종주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콘텐트 중 하나인 <호모 트레커스> 기획 중 하나다. “걷기의 노하우, 걷는 자의 철학”을 모토로 삼는 호모 트레커스는 ‘사회적 걷기’ 차원에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혼자만의 유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걷기를 고민하던 중 청소년과 함께 백두대간에서 ‘걸으며 배우며 생각하며’를 구상했다.

13일 ‘청소년 백두대간 종주’ 참가자들이 소백산 연화봉을 오르고 있다. /김영주 제공

기획은 5월 살레시오청소년센터 황철현 신부를 만나 실행으로 옮겨졌다. 그는 살레시오청소년센터 ‘산악부’ 지도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근교 산을 다녔다. 백두대간을 해보자는 제안에 그는 “좋다”고 짧게 말했다. 청소년 보호시설이 아닌 일반 학교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야영을 겸한 장거리 하이킹’을 하려면 수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한다. 그런 제약과 위험을 감수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려는 학교나 교사도 없다. 반면 한국에 자리 잡은 외국인학교의 경우 이런 커리큘럼은 필수다.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매년 아웃도어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채드윅 송도국제학교가 대표적이다.


과정은 험난했다. 6월부터 8월까지 세 번의 트레이닝 캠프를 거쳤지만, 아이들은 산에 적응하지 못했다. 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이들이라 예상은 했지만, 8월 말 마지막 트레이닝까지 아이들은 너무 힘들어했다. 길에서 주저앉는 아이가 태반이었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다. 반면 황 신부는 흔들림이 없었다. 포기하려는 아이들을 “해보자”고 다독였다. 그는 시종일관 “아이들을 산에 데려가려는 이유는 한 가지, 재범 예방 목적”이라고 했다. 그의 종교적 신심에 기대어 험난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한 달간 백두대간 능선을 걸으며, 많은 위기와 에피소드가 있었다. 발목을 삐끗하는 부상, 아침마다 아이들이 꾀병을 부리는 일, 10대 후반 남자아이들끼리 벌이는 크고 작은 신경전 등이 반복해 벌어졌다. 사실, 그런 돌발성이 오히려 좋았다. 매 순간 길에서 어려움을 마주하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좋았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결국 걷기는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라는 점을 상기했다. 배움의 연속이었다.


청소년 백두대간 종주는 프랑스의 걷기 프로그램 ‘쇠이유’를 모토로 삼았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창립한 쇠이유재단은 소년원에 수감됐거나 수감을 앞둔 청소년을 프랑스 국경 밖으로 데리고 나가 석 달간 2500km를 걷게 한다. 청소년과 동행자 단둘만의 여정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석 달간 간난고초를 겪는 동안 청소년의 자립심을 키워 다시 학교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다. 쇠이유 프로그램과 비교하자면, 이번 백두대간 종주는 그런 점이 부족했다. 돌이켜보니 백두대간 완주라는 목표를 위해 많은 어려움을 동행자(멘토)나 지원팀이 대신한 경우가 많았다. 짐을 덜어 차량으로 옮겨준 것, 아이들 스스로 밥을 하지 않고 지원팀이 하거나 식당에서 사 먹는 것 등이다.

김영주 중앙일보 기자.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뭉클한 순간은 많았다. 8명의 아이 모두 낙오 없이 완주한 것, 마지막 ‘도착 파티’에서 12명의 부모와 함께 한 달간의 경험을 공유한 점 등이다. 걷기 전 인터뷰에서 8명 아이는 한결같이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것을 대학 산악부도 시도하지 않는 ‘백두대간 일시종주’로 증명하고 싶어 했고 모두 해냈다. 부모들은 대견스러워했다. 또 걷기가 개인의 건강 증진이나 유희를 넘어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솔루션’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도착 파티에 온 한 학생의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죄 지은 아들의 부모라고 해서 말 못 하고 살았는데, 한 달간 남의 자식 8명을 데리고 산에 가준 선생님들께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중앙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