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병사들의 군번줄이 필요 없어졌어요.”
올봄까지도 추위와 포탄을 뚫고 우크라이나 전쟁 현장을 취재했던 김영미 PD가 말했다. 드론이 병사들의 머리 위에서 폭탄을 터뜨려 살상하기 때문에 군번줄은 죽은 자의 목에 걸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 끔찍한 것은 이런 시신들에서 장기를 채취해 파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도 체온이 남아있던 누군가의 생명이 다른 사람에게는 돈으로 환산된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양국의 사상자가 10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이 최근 나왔다. 100만이라는 엄청난 숫자로도 비극의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전쟁이 모두에게 비극인 것은 아니다.
IMF는 전쟁 3년째인 올해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을 3.2%로 상향 조정했다. 방산업 중심 산업생산 증가 등에 힘입었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미국의 성장률은 2.7%, 한국은 1.5%다. 미국도 덕을 톡톡히 봤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의 국방, 우주산업은 18% 성장했다. 유럽 국가들은 앞다퉈 미국산 무기를 샀고 뻣뻣했던 태도도 고분고분해졌다.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한 유럽이 미국산 천연가스를 찾으면서 미국은 카타르와 호주를 제치고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이 됐다.
전쟁을 치르는 나라의 통치자들에게도 전쟁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전쟁 직전인 2021년 11월 63%였던 러시아 푸틴의 지지율은 전쟁 이후인 3월, 83%로 급등했다. 같은 해 12월 30%대로 바닥권이었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전쟁 발발 이후 91%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전쟁으로 대선을 치를 수 없게 됐으니, 그는 올해 자연스럽게 연임까지 하게 됐다. 이런 현상은 어디든 비슷하다. 전쟁 전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던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지금도 뇌물수수,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정권을 잃으면 처벌될 수 있다. 그런데 휴전을 거부하고 확전을 주도하자 그가 이끄는 집권당의 지지율은 폭등했다.
다음 전쟁의 기운은 한반도에서 무르익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하면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전쟁을 불사하는 듯한 발언을 계속해 왔다. 정부는 탈북단체의 전단 살포에 반발해 북한이 오물풍선을 날리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이어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해 전쟁을 막을 안전핀마저 제거하고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북한은 비무장지대에 방벽을 쌓으며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경로로 외부 정보를 접하게 해 북한을 내부로부터 변화시킨다는 통일 독트린도 발표했다. 북한으로선 대북 심리전을 펼치겠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다가 평양 상공에 남한 무인기가 전단을 뿌렸다며 북한이 군사적 대응까지 경고하는 위기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북한이 자살을 결심하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거나 “위해를 가한다면, 그날이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라는 거친 말이었다. 이것은 전쟁을 막으려는 언어가 아니다. 이러니 사람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기록적인 낮은 지지율, 불거지는 주변의 여러 의혹들과 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연계해 생각한다. 군사적 충돌은 모든 이슈를 일거에 흡수할 것이다.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정작 전쟁터에는 나가지 않는다. 전쟁에 아무 책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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