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KBS 사장 공모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역대 사장 공모 과정이 시끄럽지 않은 경우가 손꼽힐 정도지만 이번엔 유독 정도가 심하다. 특히 지원한 인사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과연 이들이 공영방송 수장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프로그램 방송은 막고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극우 유튜버에게 맡기며 공영방송의 경쟁력을 끌어내리고서도 버젓이 재임 도전에 나선 현 사장(박민), 그 사장 밑에서 기사에 ‘한중일’은 ‘한일중’으로, ‘전두환 씨’가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통일하라고 지시한 방송주간(김성진), 대통령과의 신년 대담에서 대통령 부인이 받은 명품 가방을 ‘조그마한 파우치’라고 부르고도 여전히 9시뉴스 진행자 자리를 꿰차고 있는 현역 앵커(박장범), 여기에 원래 꿈꾸었던 방송사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자 지원했다(!)는 전직 기업 임원(김영수)도 있다.
이들 4인은 모두 스스로 자신을 추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 속 평원군 열전에 나오는 ‘모수자천(毛遂自薦)’을 똑 닮았다. 주머니 속 송곳은 뚫고 나오는 법이라며 제각기 스스로를 사장 후보로 내세웠는데 과연 그러한가? KBS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청사진을 그린 경영계획서를 보면 이들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나같이 수신료 분리 징수가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하면서도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위기를 부른 본질은 외면하고 있다.
방통위와 협의해 수신료 체납을 막고 징수 비용을 줄이며 모바일 등 뉴미디어 기기에 대한 수신료 부과 방안을 모색하겠다(박민), IT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납부 등 징수 방법을 정비해 수신료를 직접 징수하겠다(김성진), 수신료 미납 대책으로 등록 면제 수상기 범위 축소 검토 및 추진하겠다(박장범)고 하는가 하면 1TV의 다큐멘터리는 성공 보수 개념으로 2TV로 팔아 시청료 미징수로 인한 재정 압박을 이겨내자(김영수)고도 했다.
사태의 핵심은 수신료 분리 징수로 KBS 재원의 근간을 뒤흔들어 공영방송을 순치시키려는 정권의 시도이다. 그럼에도 사장 후보들은 어느 하나도 이를 지적하고 정면 돌파하기는커녕 ‘뜬구름 잡는’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장을 하겠다고 나선 후보들도 문제지만 대통령에게 사장 임명 제청의 권한이 있는 KBS 이사회 역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사회는 시민들이 직접 KBS 사장 선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2018년 도입한 시민자문단 제도를 지난해 사장 공모 때부터 없애버렸다. 시민 참여를 원천 봉쇄한 채 밀실에서 야합으로 사장을 뽑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최근 서기석 KBS 이사장은 업무방해 혐의로 언론노조 KBS본부로부터 고발도 당했다. 지난해 10월 KBS 보궐 사장 최종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당시 박민 후보를 사장으로 앉히기 위해 일부 여권 이사를 압박하고 결선 투표 진행을 일방적으로 연기해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게 고발 이유다.
2024년 KBS가 내건 방송지표는 ‘공정과 혁신으로 새로운 KBS’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저런 방송지표를 실천하려면 제대로 된 리더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새롭기는커녕 전혀 공정하지도, 혁신적이지도 않은 후보들에다 자신들이 뽑고자 하는 후보만 뽑으려는 이사회가 가뜩이나 흔들리는 공영방송 KBS의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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