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의 주인공 메리언 매켈핀은 먹는 것을 거부한다. “거의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정상”인 메리언은 갓 대학을 졸업하고 설문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 전 전도유망한 변호사이자 괜찮은 외모의 남성 피터로부터 당신만큼 ‘현명한’ 여자는 없다며 청혼을 받았다. 그러나 피터의 청혼 이후,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메리언이 노력하면 할수록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였다. 하지만 달걀, 채소, 케이크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메리언은 스스로에게 잡아먹히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한다. 과연 메리언은 미친 걸까?
임솔아 시인은 <빨간>이란 작품에서 “여자라는 말을 들었다/ 먹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했는데, 여성을 먹을 것에 비유하는 것이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유독 한국에서 남성 정치인, 기자, 교수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까지 여성을 대놓고 먹을 것에 비유해 논란을 일으키는 일이 잦다.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곰에서 왕으로>에서 ‘식인’을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대상을 삼켜서 파괴함으로써 추상적인 유동체로 바꾸어버리는” 개념이라고 했다. 여성을 먹는 것에 비유하는 행위는 상대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파괴하고, 성적대상화(타자화)를 통해 재생산하는 과정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여성을 남성의 지배질서에 순치시키려는 강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파괴 과정은 때로 ‘태움’이나 ‘갑질’ 또는 ‘교육’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성이 가부장적 사회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파괴당한 뒤 지배질서의 일부로 재생산되어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지혜의 여신 메티스가 “아들을 낳으면 왕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이 두려워 자신의 첫 번째 아내를 산채로 집어삼킨다. 그 결과 제우스의 머리를 쪼개고 태어난 아테나는 아버지의 지배질서에 절대적 충성을 바치며 자신을 진정한 남성 편이라 주장하는 ‘명예남성’이었다.
언론계 종사자에 대한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 역시 새삼스럽지 않다. 2017년 남성 기자 4명이 단체대화방에서 여성 기자들의 실명과 신체 특징 등을 자세히 언급하며 지속적으로 성희롱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감봉 1개월에서 3개월에 그치는 솜방망이 징계였다. 2019년에는 기자와 PD 등 다수의 언론인이 참여한 오픈 채팅방에서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불법 촬영물과 음란물을 공유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일어났다. 하지만 해임 등의 중징계는 없었다.
올 6월에는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여성기자 풋살대회에 참가한 동료 기자들의 신체를 두고 단체대화방에서 품평하며 성희롱한 사실이 밝혀졌다. 8월27일자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국가정보원 직원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 평소 함께 모임을 갖는 여성 기자들을 특정해 “맛나보여요”, “쫄깃쫄깃”같은 성적 행위를 연상시키는 대화를 나눠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간 수많은 여성이 언론계에 진출했지만, 남성 중심의 언론 구조와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는 쉽게 변하지 못했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마저 제작되는 현실에 맞서 싸우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여성 기자들은 믿었던 동료들이 등 뒤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게 되었다. 한국일보는 9월24일부터 자사의 기자 소개페이지에 “딥페이크 범죄 엄하게 처벌됩니다”란 경고 문구를 달았다. 그러나 같은 날, 한국일보 자회사가 개최한 제68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는 여성 참가자들에게 “딥페이크 영상 속 내가 더 매력적이라면, 진짜 나와의 갭은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란 질문이 던져졌다. 애트우드의 소설 주인공 메리언은 가부장적인 약혼자 피터와 헤어진 뒤에야 비로소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런 구조와 문화와 결별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해결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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