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통한 부산저축은행 수사무마 의혹 보도로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언론인들이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무리하게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판부의 지적에도 굳이 범행동기를 밝히겠다고 하기 위한 장치로 결국 정치적인 의도의 ‘보여주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8월 시작된 이번 재판에서 검찰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윤 대통령 명예훼손을 계획한 경위와 동기를 공소장의 절반을 할애해 주장해 왔다. 대장동 개발 비리와 성남시장 시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유착을 은폐하려 했다는 것이 검찰이 찾은 김씨의 범행동기다. 이 대표는 개발이익을 ‘공공환수’해 갔다며 추켜세우는 동시에 윤석열 당시 후보를 대장동 비리의 몸통으로 덮어씌워 세간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는 데는 범행동기가 불필요하다며 여러 번 제지했지만 그때마다 검찰은 ‘비방할 목적’을 입증하겠다며 맞섰다.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이라면 범행동기는 죄질을 따질 때 참고해 형량에 반영하면 될 뿐이지만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일반 형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이다. 최대 형량이 징역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나는 만큼 검사가 비방 목적까지 증명해야 한다.
문제는 인터넷에 기사를 올린 뉴스타파 기자들과 달리 신학림 전 전문위원과 직접 만나 대화한 김씨에게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적용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점이다. 검찰이 주장해 온 대로 김씨와 신학림 전 전문위원,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와 한상진 기자 등 피고인들이 ‘허위 인터뷰’를 공모했다면 사건의 발단인 김씨도 공범으로서 정보통신망법 위반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장에서 김씨를 공범으로 적지 않았다. 오히려 신 전 전문위원에 대해 오랫동안 기자로 일했으니 수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자기변명성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의심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적었다. 신 전 전문위원이 경솔해 죄질이 나쁘다는 내용이지만 적어도 김씨와 범행 공모는 없었다고 검찰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검찰은 뉴스타파 보도 대가로 김씨가 신 전 전문위원에게 대장동 개발이익에서 100억원을 떼어주겠다고 약속했다고도 주장한다. 녹취록이 공개된 2021년 9월15일 대화에서는 김씨가 자신이 알려준 내용이 보도되면 안 된다고 두 번이나 말했지만 이틀 뒤 다시 만나서는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설사 김씨의 계획이 신 전 전문위원에게는 통했더라도 뉴스타파에까지 범행 의도가 그대로 오염돼 실현됐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 뉴스타파는 외부 전문가들로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보도 결정은 뉴스타파 구성원들의 독립적인 자체 판단으로 이뤄졌다는 조사 결론을 5월 발표했었다.
진상조사에 참여한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신 전 전문위원이 인터뷰이로 출연하긴 했지만 직접 보도를 한 게 아니어서 뉴스타파 기자들과 함께 정보통신망법 위반이 적용될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여기에 김씨까지 같은 혐의를 적용하는 건 그 사이의 상당히 많은 단계를 건너뛴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측으로서는 당장 검찰에 적용 혐의를 수정해 달라고 요구할 이익이 없다. 검찰의 공소 제기에 문제가 있는 상태로 내버려두는 편이 재판부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검찰도 윤 대통령을 비호하고 대장동 일당과 함께 이 대표를 비방하려는 의도라면 앞으로도 계속 범행동기를 주장하는 편이 이익일 수 있다.
한 교수는 “비방 목적을 입증하겠다고 하더라도 범행동기를 공소장에 너무 상세히 적으면 판사를 예단하게 만들어 공소장 일본주의 원칙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며 “검찰이 범행동기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건 언론에도 보도되게 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범행동기를 자세히 설명하는 건 김씨가 유포한 부산저축은행 수사무마 의혹이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씨에게 범행 은폐라는 급박한 이유가 있는 만큼 그가 한 말도 거짓말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뉴스타파의 보도 내용이 허위인지는 부산저축은행 수사무마 의혹의 실체를 확인하면 될 일이라며 쟁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검찰의 핵심 주장대로 2011년 당시 대검찰청의 수사범위에 대장동 대출 건이 빠져 있었다고 인정해도 윤석열 당시 검사가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의 범죄를 인지했을 개연성도 충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허경무) 심리로 세 차례 준비기일을 거쳐 9월24일 1차 공판을 시작으로 본 재판에 돌입했다. 재판부는 오는 22일 2차 공판을 열어 증인신문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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