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옥. 국수를 파는 집이다. 뜻만 따지자면,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 팔아도 면옥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주로 이북식 국수 같은 향토 면 음식점에 쓰여온 명칭. 대부분은 자기 스타일을 오래 지켜온 곳에 붙은 상호다. 전국 어딜 들러도, 면옥은 실패가 거의 없다. 서울 종로 일대도 마찬가지다.
동료 기자와 낮술을 하고 밝은 날 데굴데굴 구른 필동면옥부터 주말 점심 때 굳이 택시까지 부른 선배 손에 끌려갔다가 이제는 혼자서도 들르는 을지면옥까지, 전부 알아주는 맛집이다. 맛도 맛이지만 ‘면옥’ 상호에 담긴 섬세한 뉘앙스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기자 중에 많았다. 그들과 같이 앉아 국물을 떠먹는 게 이 일에서 몇 안 남은 즐거움 중 하나다.
중구 다동 남포면옥도 10여 년 전 수습기자 시절, 선배 기자 손에 이끌려 간 곳이다. 그때만 해도 냉면 맛을 몰랐다. 밍숭맹숭한 국물 맛을 한 번 본 다음, 두루미 부른 여우처럼 환대하는 선배 표정과 옆자리 나와 똑같이 당혹스러워하는 동기 표정을 번갈아 봤다. 면만 대충 깨작대며 건져 먹고 ‘속이 좀 안 좋다’ 했다. 밍밍한 냉면 맛을 좋아할 리는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년 지나 중동특파원으로 이집트에 나가 있을 때 이 집 냉면이 사무쳐서 자던 중에 벽을 긁었다.
남포면옥 냉면은 슴슴한 가운데서도 동치미 국물 맛이 잘 느껴지는 편이다. ‘평냉러’들은 시큼한 맛 때문에 남포면옥을 평냉 초심자 레벨로 평가하기도 한다. 진한 육향만으로 채워야 진정한 평냉이고, 이를 벗어나면 다 꼼수처럼 여겨서다. 그래서 남포면옥을 ‘사파’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동의하기 어렵다. 동치미 국물 맛을 사철 균질하게 관리하고, 적절히 배합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귀한 노하우인가.
남포면옥은 동치미 육수라는 오리지널리티를 고집스럽게 지키지만, 직장인 많은 동네 특성에 맞게 유연하게 갈비탕 식사 메뉴를 내고 있기도 하다. 질 좋은 고기 맛 또한 기막히다. 이 집에선 고집을 지켜야 할 순간과 유연해야 할 순간이 적절히 만난다. 나는 그런가. 후배를 여기서 만날 땐 국물을 뜨다가 뜨끔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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