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172) 영글어가는 벼처럼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장진영(중앙일보), 오세림(전북일보), 홍윤기(서울신문), 김진홍(대구일보), 김범준(한국경제), 박미소(시사IN)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추석 전날이면 시골집 마당에서 제기를 차며 작은아버지 가족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사촌 동생도 보고 싶었지만, 작은아버지와 함께 하는 제기차기가 더 기다려졌습니다. 이기면 받는 용돈이 짭짤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작은아버지가 학교 다닐 때 운동에서 져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저는 믿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상관이 없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일부러 져줬다는 걸 알게 된 건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습니다. 그 높았던 내 유년의 하늘, 오전 내내 제기를 찼어도 덥지 않았던 그 선선한 바람 속 추석은 올해를 시작으로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폭염과 열대야 기록을 다 갈아치웠다는 2024년 여름은 내년 여름 더욱 혹독한 더위의 예고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계절은 바뀌어 갑니다. 우리에게 ‘그래도 살아간다’고 온몸으로 말을 전하는 풍경들을 하나둘씩 던져 줍니다. 사진 속 영글어가는 벼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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