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을 여권 우위로 재편해 MBC 사장 등 경영진 교체를 추진하려 했던 이진숙 체제 방송통신위원회의 시도가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발목이 잡혔다. 서울행정법원은 26일 방통위의 신임 방문진 이사 6명 임명에 대해 효력을 정지하며 권태선 이사장 등 야권 성향 이사 3명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기존 방문진 이사들의 임기는 본안 소송 1심 판결까지 이어지게 됐고, 여야 3대6의 방문진 이사진 구도가 유지되며 윤석열 정부 차원의 MBC 사장 해임 추진 또한 어려워졌다.
◇법원 “방통위원 2인만의 의결 입법목적 저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가 방문진 권태선·박선아·김기중 이사 3명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주요 판단엔 △방통위 2인의 위원으로만 중요 사항 심의·의결은 방통위법이 추구하는 입법목적 저해 △신청인(방문진 이사 3명)들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임명 처분의 효력을 정지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 인정 등이 있다.
특히 재판부는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2인 체제’ 방통위의 의결에 대해 “적법 내지 위법 여부를 다툴 여지가 있다”고 했는데, 같은 날 방문진 이사 지원자가 같은 내용으로 제기한 집행정지를 기각한 행정6부의 결정문에도 방통위 2인 체제 의결 위법성 소지 가능성이 거론돼 있다. 해당 재판부는 “임명 처분이 대통령이 지명한 2인 상임위원의 찬성만으로 의결된 것으로, 방통위법의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할 때 본안소송을 통해 의결정족수 충족 여부를 다툴 수 있다”고 봤다.
2인 체제 의결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인정한 법원의 판단으로 현행 방통위법상 의결정족수를 채워 어떠한 위법성이 없다는 방통위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주요 사유도 ‘2인 체제 의결 위법성’인 만큼, 이번 법원 결정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법원 결정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방문진 이사 임명 효력을 정지한 법원의 결정이 나온 직후 방통위는 즉시 항고하겠다며 “정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의결했다는 점을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고, 대통령실도 “항고심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반면 이날 권태선 이사장은 박선아·김기중 이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판결이 대통령과 국회가 함께 방통위를 본연의 합의제 기구로 되돌리기 위한 대화에 나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5인 체제로 정상화된 방통위에서 새로운 이사들이 선출될 때까지 MBC가 공영방송으로 제 구실을 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도 “재판부의 합리적이고도 용기 있는 판단, 역사적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한다”면서 “이번 결정으로 윤석열 정권의 ‘MBC 장악’ 시도가 중단될 것이라고도 기대하지 않는다. MBC 장악 시도에 더욱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여야 3대6 방문진 구도 최소 수개월 유지
집행정지 신청의 발단은 7월31일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이 취임 당일에 전체회의를 열어 방문진 이사 정원 9명 중 6명만을 임명하고, KBS 이사 11명 중 7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기로 의결하면서다.
이번 행정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당초 지난 12일 임기 만료 예정이었던 기존 방문진 이사들의 임기는 본안 소송인 임명처분 취소 소송 판결까지 유지된다. 행정소송 본안 판결은 통상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방통위는 항고 의사를 밝혔으나 앞서 권태선 이사장에 대한 해임 효력을 최종 정지한 대법원 결정이 나오기까지 7개월이 걸린 만큼, 방문진 이사 임명 처분 집행정지에 대한 최종 결정도 6~7개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방문진 여야 3대6 구도가 이어지면서 방문진을 여권 우위로 바꿔 MBC 경영진을 교체하려던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당분간 어렵게 됐다.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 6명 임명을 무효화하고, 새롭게 방문진 이사를 공모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탄핵소추안 통과로 이진숙 위원장 직무가 정지되며 방통위는 김태규 직무대행 ‘1인 체제’라 회의 개최도, 안건 의결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진숙 위원장이 헌재 탄핵 기각 결정으로 복귀해 새 방문진 이사 임명, 혹은 야권 성향 방문진 이사 해임 등을 의결한다 해도 또 ‘2인 체제 의결 위법성’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편, KBS 야권 이사 5명도 27일 방통위의 KBS 새 이사 추천 및 대통령의 임명안 재가에 대한 효력 정지를 구하는 집행정지 신청과 취소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해 이진숙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의결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김찬태·류일형·이상요·정재권·조숙현 KBS 이사는 소송을 제기하며 “방통위 ‘2인 체제’가 공영방송 이사 선임 및 추천에서 저지른 위법성은 법원이 방문진 이사 선임의 효력을 정지시킨 것에서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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