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장진영(중앙일보), 오세림(전북일보), 홍윤기(서울신문), 김진홍(대구일보), 김범준(한국경제), 박미소(시사IN)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시원한 무언가가 보고 싶었다. 한 달 내내 집중호우를 동반한 장마가 이어지고 비가 그치면 폭염이 되풀이되면서 남은 건 지친 일상뿐이었기 때문이다.
사진첩을 뒤적였다. 그러다가 찾아낸 사진. 지난겨울, 북위 66.5도에 위치한 노르웨이 트롬소에서 찍은 혹등고래(humpback whale)다. 보트 위에서 멀미와 씨름하며 식어버린 커피 몇 잔으로 지쳐갈 때쯤 거짓말처럼 눈앞에 등장한 게 ‘이놈’이었다.
길이 15m, 몸무게 25~30t으로 한 번에 2t의 크릴새우를 먹어치우는 대형 포식자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온 바로 그 흰고래가 바로 혹등고래다. 소설처럼 흰 혹등고래를 현실에서 볼 확률은 크지 않다.
언감생심 검은 혹등고래의 꼬리를 담아낸 것만으로 그날 밤의 보상은 충분했다. 고래의 꼬리는 보기만 해도 행운이 온다고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다. 45분 동안 잠수한 뒤 4m까지 물을 힘차게 뿜었다가 바닷속으로 들어가면서 남긴 처절한 생존의 흔적이기도 하다.
다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위에 무너지지 않고 나의 생존 흔적을 남기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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