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보도는 특수 영역… 심층성보단 '규범' 먼저 지켜야"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연구팀
13개월 동안 노동보도 모니터링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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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코레일(한국철도공사) 노조의 파업을 다룬 여러 언론 중 거의 유일하게 교통약자의 관점에서 현장을 담은 기획 <공공성의 역행>을 보도한 한겨레, 올해 3월 보수언론의 관행을 깨고 전태일재단과 협업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비판한 <12대88의 사회를 넘자> 기획을 보도한 조선일보. 어느 쪽이 더 나은 노동보도일까?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지난달 말 ‘한국 노동보도 모니터링 보고서’를 내놓았다. 연구팀은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용역을 받아 지난해 3월부터 13개월 동안 8개 일간지의 노동보도의 양과 질을 수치로 분석해 내는 과제를 수행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역설적이다. 노동보도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심층성’보다는 ‘규범’을 먼저 지키라는 것이다. 보고서에 제시된 규범은 균형성이다. 노동은 선악이 아니라 다수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의 문제다. 또 정치와 경제는 물론 복지, 행정, 조세 등 여러 전문 분야가 교차한다.


이 때문에 언론이 일방적인 대안을 섣불리 내세우면 첨예한 갈등만 더 키울 위험이 있다. 특정 진영의 논리를 구체적 근거를 담아 자세히 보도하기보다 심층성은 떨어져도 균형을 우선 지키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2023년 9월14일 한겨레신문 특집면에 실린 <공공성의 역행> 기획.

앞서 나온 한겨레와 조선일보 기획 모두 우수한 보도로 보이지만 각각 문제점이 있다. 한겨레는 기획을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보고서는 “철도 민영화 이슈의 한 당사자인 노조 측으로부터 지원 또는 후원을 받아 굳이 파업이 임박한 시점에서 일련의 보도를 내놓아야 했는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경제지가 사측의 지원을 받았다고 밝히고 파업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라고 지적했다. “누구의 힘이 더 강한지 고려해 누구 주장을 더 강조할지 판단”하지 말고 “여러 이해당사자가 함께 읽고 성찰할 수 있는 ‘종합적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깊지만 일방적인 보도가 오히려 나쁜 결과를 낳은 것이다.

3월5일 조선일보가 창간 104주년 공동기획으로 전태일재단과 협업해 내놓은 <12대88의 사회를 넘자> 기획.

안수찬 교수는 조선일보 기획의 경우 “기획 과정에 있던 시비는 차치하고 조선일보가 노동보도를 관심갖고 보도할 역량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그런데 조선일보가 일상적으로 보도하는 거의 모든 노동 기사는 이해당사자와 현장 취재, 균형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언론이 만드는 공론장이라는 저수지에는 일상적으로 1년 내내 그럭저럭 마실 만한 물이 흘러들어와야 한다”며 “오염된 저수지에 심층기획으로 하루 이틀만 맑고 깨끗한 물을 공급한다고 해서 언론의 역할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노동보도 전반의 수준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공들인 기획과 일상적인 보통의 보도가 마치 별개처럼 다뤄지는 현상은 안 교수가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과 2022년 함께 수행한 ‘노동보도 현황과 개선 방안 연구’에서도 문제로 제시됐다.


연구팀은 양적 분석 결과 친재벌이라고 평가받는 중앙일보가 취재원 분배 균형을 지키고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느라 분량도 길었다며 다른 보수신문보다 나은 점수를 주기도 했다. 안 교수는 “의사가 10명이 있다면 10명 모두 규범을 우선 지켜야 환자가 병원이라는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다”며 “그중에 몇이 역량이 특별히 높은지는 그다음에 따질 문제다. 언론도 평균적인 보도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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