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D저널리즘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KBS 대표 시사고발 프로그램 ‘추적60분’은 지난 2010년 김인규 사장 시절 PD들의 거센 반대에도 보도본부로 이관된 적이 있다. 이후 보도본부 소속으로 ‘4대강’,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편 불방·연기 사태 등 숱한 아이템 사전 검열,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을 겪다가 2013년 제작본부로 환원됐지만, 14년 만에 또다시 보도본부로 이관될 위기에 처했다.
KBS가 ‘1실 6본부 3센터 46국’인 본사 조직의 ‘1실 4본부 6센터 36국’ 개편을 골자로 한 조직개편을 추진한다. 사측이 1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에 밝힌 조직개편안 중엔 추적60분 등 제작1본부 산하 시사교양국에서 맡는 시사 프로그램 보도본부 이관이 있다. KBS 시사·교양 PD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제작1본부 산하 시사교양국은 “사실상 해체”되며 ‘시사’가 빠진 채 사장 직속 ‘교양다큐센터’로 신설된다. KBS 이사회는 17일 해당 내용의 ‘직제개편 개정안’을 의결 안건으로 임시 이사회를 연다.
KBS본부가 16일 진행한 ‘추적60분 제작진 긴급 기자회견’엔 김은곤 KBS PD협회 부회장을 비롯해 추적60분 담당인 김민회 PD, 2010년 보도본부 이관을 경험한 강윤기 PD가 참여했다. 저연차 시사·교양 PD 20여명도 자리한 가운데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직개편안은 한마디로 시상교양국의 파국”이라며 “시사·교양 PD가 더 이상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이고, 저널리즘 역량을 빼앗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15일 제작1본부 소속 팀장 19명은 사내게시판에 조직개편안 반대 기명 성명을 내어 조직개편을 강행하면 보직을 사퇴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0년 추적60분 보도본부 이관 당시 생겼던 문제들을 설명한 강윤기 PD는 “이명박 정부는 당시 PD들이 제작하는 시사 프로그램에 대해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후 PD들이 제작한 ‘데일리시사’, ‘시사360’ 등의 프로그램이 강제적으로 사라졌고 추적60분이 이관됐다”며 “14년 후인 현재 ‘더 라이브’ 편성 삭제 몇 달 후 추적60분 이관이 추진되고 있는데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다”고 지적했다.
강 PD는 “보도본부로 이관되자마자 강제적인 업무 방식 변화 요구가 있었다”며 “원래 PD는 영상 편집본을 먼저 만들고 나서 원고 수정이 이뤄지는데 원고를 먼저 쓰라고 지시를 받았다. 원고 검열을 받은 다음 문제가 없으면 제작에 들어가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이하게도 국장이 일대일로 원고를 고치는 과정에서 아이템 검열은 수시로 이뤄졌고, 정치적으로 예민하거나 자본 권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아이템은 어김없이 수정을 받았다”며 “프로그램 예산 지원이나 인사상 불이익도 많았고, 보도본부에서 마치 섬에 고립된 것 같은 일들이 반복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추적60분 제작진인 김민회 PD도 “보도본부의 데스킹으로 인한 제작 자율성 침해가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PD는 “제작진은 물론이고 팀장, 부장, 국장까지도 이 조직개편안에 대한 의견 청취는 이뤄지지 않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도 못한 상황”이라며 “딱 한 가지, ‘기자가 만들든, PD가 만들든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은 보도시사 본부로 간다’가 전부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추적60분만 시사 프로그램으로 분류돼 보도본부로 이관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니 사측은 누가 봐도 시사 프로그램이지 않느냐고 답했다”며 “PD들이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은 추적60분뿐이라는 선언을 하고, 보도본부로 옮기고 나면 나머지 PD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시사냐 아니냐 하는 트집 하나로 얼마든지 태클을 걸 수 있는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