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이 2일 자신의 자리를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과 맞바꿨다. 야당이 탄핵안을 국회 본회의에 보고하려는 상황에서 나온 김 위원장 사퇴는 공영방송 3사 이사진, 특히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교체와 맞물려 있다.
국회가 김홍일 위원장 탄핵안을 처리하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방통위는 이상인 부위원장 1인 체제로 사실상 업무가 정지된다. 방문진 이사진을 친여 성향으로 바꿔 MBC 사장 교체 작업에 돌입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지자 정권 차원에서 김 위원장을 사퇴시켰다는 관측이 나온다.
방통위는 지난달 28일 ‘KBS, 방송문화진흥회, EBS 임원 선임 계획’안을 의결함과 동시에 KBS·방문진 이사 공모 절차를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5당이 김홍일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자 방통위는 예정에도 없던 회의를 열어 기습적으로 의결을 강행했다.
김 위원장 사퇴에 앞서 방통위가 의결한 공영방송 3사 이사 공모는 MBC를 겨누고 있다. 현재 여권 추천 이사 3명, 야권 추천 이사 6명 구도로 이뤄진 방문진이 여권 우위로 재편되면 안형준 MBC 사장 교체를 곧바로 추진할 것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그간 방통위는 권태선 이사장, 김기중 이사 등 야권 측 방문진 이사 해임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사들이 제기한 해임 처분 효력 정지 가처분을 법원이 인용하면서 방통위의 해임 시도는 제동이 걸린 상태였다.
MBC는 방통위의 방문진 이사 선임 계획 의결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등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다. 앞서 안형준 사장은 해당 안건과 관련해 이상인 부위원장을 상대로 기피 신청을 제기했으나 방통위는 “당사자 적격에 흠결이 있을 뿐만 아니라 기피 신청권의 남용에 해당해 신청 자체가 부적법하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MBC 관계자는 “문제는 기피 신청 대상자인 이상인 부위원장이 각하 결정에 관여했다는 것”이라며 “방통위는 의결 등 절차 지연을 목적으로 함이 명백한 경우 기피 신청 대상이 된 위원도 결정에 관여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는데 저희는 받아들일 수 없다. 다툼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 이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방통위가 공영방송 3사 이사진 선임 계획을 기습적으로 의결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27일 야5당이 김홍일 위원장 탄핵안을 발의한 직후 방통위는 이날 저녁 예정에 없던 다음날 의사일정 계획을 홈페이지에 공지해 해당 안건을 심의·의결한다고 밝혔다. 기자들에게 2~3일 전 배포하는 주간일정뿐만 아니라 이날 오후에 낸 위원 일정에도 없던 계획이었다. 방통위는 전체회의 방청 신청 안내를 전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출입 기자에게 공지할 정도였는데, 이번 회의가 얼마나 급박하게 잡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전체회의가 ‘위원장이 회의를 소집하고자 할 때에는 회의 개최 2일 전에 각 위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 ‘방통위 회의운영 규칙’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 13명은 방통위 의결 직후 성명을 내어 “방통위 공무원들은 이번주 내내 방문진 이사 선임 계획에 대해 ‘계획안을 만들지 않았다’ ‘예정된 일정이 없다’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며 “2일 전까지 통지되지 않았던 회의와 안건이 어떻게 갑자기 회의 전날 공지되고, 오늘 의결되었는지, 이 불법적인 과정을 누가 지시했고 어떻게 개입했는지 반드시 밝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야당이 꼽은 김홍일 위원장의 주요 탄핵 사유는 “‘2인 체제’ 방통위의 위법성”이다.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두 명 만으로만 운영되는 것은 위법하다는 건데 이번 공영방송 이사 선임 의결로 2인 체제 방통위는 또 한 번 주요 의사 결정을 하게 됐다. 해당 의결 당일 민주당은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방통위는 KBS·방문진 이사 서류 접수 공모를 11일까지, EBS 이사의 경우 12일~25일 진행하기로 했다. 지원자들의 지원서를 방통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국민들로부터 지원자들에 대한 의견을 접수할 계획이다. 다만 면접심사를 진행했던 2021년 당시와 달리 서류전형 후 “필요시 면접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 사퇴로 변수가 생겼지만, 방문진 이사진 교체는 8월12일 임기 만료 후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후임을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을 빠르게 진행하면 이르면 이달 말 새 방통위원장 임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영방송 이사 추천 구조 등을 바꾸는 내용의 ‘방송3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법 시행 시 방통위가 임명한 공영방송 이사진은 새로 뽑아야 한다는 문제도 안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지난달 28일 성명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방송3법에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거짓 선전으로 시간만 끌어온 이유가 분명해졌다”며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MBC를 장악하는 것이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당신들이 MBC를 장악하려 하면 국민의 가혹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즉각 이사진 선임 절차를 중단하고, 방송3법 개정 논의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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