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을 혐오스럽게 표현한 캐리커처를 그려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작가와 전시한 서울민예총이 기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정하정)는 19일 기자 22명이 작가 박모씨와 서울민예총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씨는 기자 1인당 각 100만원, 서울민예총은 그 중 각 30만원을 공동으로 지급하라”고 했다. 또 박씨에게 7일 이내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게시한 관련 글을 삭제하라고 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그린 캐리커처는 원고들의 외모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 비하하고 인격적으로 모욕해 원고들의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캐리커처에 원고들의 실명과 소속 언론사, 실물 사진이 첨부되어 캐리커처가 누구를 그린 것인지 명확하게 특정되고 △동의 없이 원고들의 얼굴을 함부로 그림으로 묘사하고 공표했고 △캐리커처를 그리고 공표한 것이 원고들의 외모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 비하하고 인격적으로 모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원고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자들에 대한 모욕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캐리커처로 원고들을 매우 기괴하고 혐오스럽게 묘사했고, ‘ㄱㄷㄱㅌㅊㅍㄹㅈㅌ’라는 초성이 ‘기더기퇴치프로젝트’를 나타낸다고 봄이 상당해 원고들을 기레기로 규정짓고 퇴치하자는 등 원고들에 대한 모멸적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려진 것임을 보여준다”고 판단했다.
앞서 박씨는 2020년 4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기자들을 희화한 캐리커처와 기자 실명, 소속 언론사를 기재하고 기자들 실물 사진을 실었다. 또 캐리커처 아래 ‘ㄱㄷㄱㅌㅊㅍㄹㅈㅌ’라는 초성을 기재하고 기자들의 외모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고, 기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홈페이지나 유튜브 영상 등의 링크를 게시했다. 서울민예총은 2022년 6월 ‘굿바이 시즌2-언론개혁을 위한 예술가들의 행동’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박씨가 그린 전·현직 기자와 방송인, 정치인 등 100여명에 대한 캐리커처를 전시하고 그 옆에 ‘기레기 십계명’이라는 글을 전시했다.
캐리커처의 대상이 된 기자 22명은 박씨의 캐리커처와 게시글, 서울민예총 전시가 명예훼손, 모욕, 초상권 침해 등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2022년 9월 1인당 1000만원씩 모두 2억20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박씨 쪽은 “캐리커처와 ‘기레기 십계명’은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에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원고들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울민예총 쪽도 “캐리커처는 표현의 자유 보호 영역 내에 있어 위법하지 않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원고들이 작성한 기사에 대한 비평, 비판이 아닌 얼굴을 희화화하고 비하한 캐리커처에 ‘기레기’ ‘기더기’ 등의 표현을 사용했고, 게시물 내용 역시 외모 비하, 인신공격이 주를 이루고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다거나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씨의 게시물이 원고들에 대해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명예훼손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서울민예총에 대해서는 “박씨가 캐리커처 등을 전시하게 함으로써 공동 불법 행위 책임이 인정된다”고 봤다.
서울민예총 쪽은 항소 입장을 밝혔다. 김지호 서울민예총 사무처장은 “먼저 작가들의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며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은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가 주도했고, 서울민예총은 주최 단체로 명의를 제공한 것으로 공동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기자들을 대리하는 진한수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나 예술로 포장해 기자들을 인신공격한 것이 이번 재판의 본질”이라며 “팩트를 보도했더라도 자기와 정치성향이 다르면 무조건 모욕하는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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