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올리브유 샤워 마친 '흰살생선 카르파치오', 술 한 잔 곁들이면?

[기슐랭 가이드] 서울 서교동 자크르

단골 술집 이름인 자크르는 ‘꼭 알맞게 좋다’라는 우리말이다. 임진규 사장님의 세 번째 가게다. 나는 두 번째 가게인 ‘노을’ 시절부터 손님이었다. 그러나 노을의 운명도 코로나19를 피해 가지 못했다. 졸지에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 나는 이제 술을 어디서 마시지? 널린 게 술집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수많은 술집이 있다고 해도 노을은 단 하나였다. 잘 관리된 생맥주, 창의적이면서도 맛있는 안주류, 친절한 사장님과 적당히 시끄러워서 편안했던 곳. 내게 노을은 술집의 ‘정답’이었다. 나와 노을에 가지 않았던 친구는 없었다.

임 사장님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은 2023년 6월이었다. “충분한 휴식 덕분에 서교동에 협소하지만 따뜻한 공간 하나 마련하게 되었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고 뛸 듯이 기뻤다. 무엇보다 3년 만에 ‘흰살생선 카르파치오’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기까지 했다. 자크르의 카르파치오는 흰살생선을 주재료로 쓴다. 중식 생선 요리 중 뜨거운 기름을 부어 만드는 요리에서 착안해 재해석한 음식이다. 흰살생선에 뜨거운 올리브유를 부어 겉을 살짝 익힌 후 날치알, 생강, 파 등을 올려 낸다. 주로 광어를 사용하지만, 운이 좋으면 서울에서는 좀체 먹을 수 없는 달갱이가 쓰일 때도 있다. 나는 이곳에서 달갱이를 처음 맛봤다.

자크르에 왔는데 카르파치오를 시키지 않는 테이블을 보면 안타까움에 끼어들고 싶을 정도다. 어느 날에는 참지 못하고 모르는 테이블 손님에게 ‘꼭 좀 드셔보시라’고 끼어든 적도 있다. 혼자 가도, 둘이 가도, 여럿이 가도 카르파치오는 반드시 첫 번째로 먹는다. 위장에 ‘이제 술이 들어갈 거야’라고 알리는 신호다. 자크르의 가게 크기는 노을 때에 비해 3분의 1 규모로 작아졌다. 바(bar) 자리를 포함해 열한 개뿐인 좌석을 두고 사장님은 더도 덜도 욕심내지 않고 딱 그만큼만 가능한 규모로 밥벌이한다. 안주류나 술 종류도 그만큼 줄었지만, 오히려 좋다. 여럿이 저녁을 먹지 않고 간다면 메뉴판의 모든 음식을 순서대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상하게 맛있는 파스타 종류 역시 추천한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접수: 이메일 taste@journalist.or.kr(기자 본인 소속·연락처, 소개할 음식 사진 1장 첨부)
▲채택된 분에겐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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