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헌재 수신료 합헌' 입장문... 내부 "구성원 겁박 가득"

경영진, 사내게시판에 글 올려... 박민 사장 부실대응 책임론 의식한 듯
KBS본부 "공개변론 이끌어 재판부에 수신료 수입 급감 등 설명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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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현 경영진의 책임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KBS 미래구상 추진에 발목을 잡으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각종 불법, 탈법 행위와 반 언론적 행태, 정관과 사규 위반 행위 등에 대해 필요할 경우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해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을 묻겠다.”

KBS 사측이 헌법재판소의 TV 수신료 분리징수 합헌 선고 6일 만에 ‘경영진 일동’ 입장문을 냈다. “엄포성”과 같은 경영진의 입장에 “공영방송을 지키려는 구성원들에 대한 겁박으로 가득하다”는 내부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11월13일 KBS 사장 취임식. 박민 사장(맨 왼쪽)과 함께 임명된 본부장 등 임원들이 서 있다. /연합뉴스

5일 KBS 경영진은 사내게시판에 입장문을 올려 “어제(4일) 수신료 수납 시스템 안정적 정착의 최대 관건인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며 “이로써 현 경영진이 출범할 당시 KBS의 존립을 위협했던 3대 위기 중 국고보조금 전액 삭감과 2TV 재허가 등 위기는 해결됐고 최대 난제였던 수신료 문제 역시, 분리고지가 현실적으로 불가역적인 상황에서 KBS로서는 최선의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직개편 △직급체계 및 승진제도 개선 △임금협상 등 3가지 과제 대해 “왜곡된 KBS의 조직 및 인력 체계의 정상화인 동시에 미래와 도약을 위한 첫걸음”이라면서 “KBS가 미래를 향한 도전을 시작할 시점에 안타깝게도 과거의 질곡을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미래의 장애물로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다.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4월 KBS는 직급체계 및 승진제도 개편 사원 설명회를 열어 개편 추진안을 알렸지만, 다양한 연차의 직원들과 여러 KBS 노조(언론노조 KBS본부, 같이노조)의 비판을 사며 ‘원점 재검토’ 요구를 맞닥뜨린 바 있다. 현재 KBS엔 과반 노조가 없어 사측이 직급체계 개편, 조직개편 등을 시행하려면 직원 과반의 동의와 이사회 의결 절차가 필요하다.

또 경영진이 이날 입장문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사안을 언급한 것도 헌재 합헌 결정 이후 내부에서 제기된 박민 사장 등 경영진의 ‘헌재 부실 대응 책임론’에 대해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헌재 선고 당일 박민 사장 등 주요 임원들이 방송경영인 세미나 참석을 위해 제주도에 방문한 일에 대해 KBS본부는 5월31일 성명에서 “사장이 서울로 돌아와 비상회의를 소집해도 모자랄 판에 주요 총국장들과 제주도에서 술판을 벌이는 게 가당키나 한가”라며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낙하산 박민 사장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질타한 바 있다.

KBS 경영진은 5일 입장문에서 “지난 1년여 KBS를 사지로 내몰았던 수신료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수신료 분리고지를 촉발시켰던 공영방송의 공정성 훼손과 방만경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문제를 만들어 놓고 그걸 해결하겠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한 것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했다. 김의철 전 KBS 사장 시절인 지난해 7월 정부가 TV 수신료·전기요금 분리징수를 명시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와 동시에 시행하자 KBS는 해당 시행령 위헌확인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어 KBS 경영진은 “헌법소원과 관련된 핵심적인 법리 공방은 현 경영진이 출범하기 이전인 지난해 10월 사실상 마무리됐다”며 “특히 현 경영진은 헌법재판소가 ‘수신료 징수 실적 추이 및 증거 제출’ 등의 보정 명령을 내린 데 대해 보정기한 연기신청서까지 제출하면서 KBS에 유리한 자료를 채증하고 대응 논리를 마련해 13개 면에 달하는 보정서와 13개의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KBS본부는 이날 사측 입장문 관련 성명을 내어 “예상은 했지만, 안타깝게도 경영진의 입장은 공영방송을 지키려는 구성원들의 인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있다”며 “적어도 제대로 된 경영진이라면 책임을 떠넘기고 구성원들을 겁박하는 입장을 낼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근거로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설득력 있게 동참을 요구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KBS본부 조합원을 비롯한 많은 공영방송 구성원은 지금 위기가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수신료 분리고지에서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수신료 분리고지는 공영방송을 길들이려는 정권의 야욕에서 비롯됐다”며 수신료 문제 발생 원인을 언급한 사측의 입장을 반박했다.

KBS본부는 “핵심적인 법리 공방이 지난해 10월 마무리 됐다는 (경영진) 발언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며 “전임 집행부가 공개변론을 신청한 때가 지난 10월이다. 어떻게든 공개변론을 이끌어내 수신료 수입 급감의 우려와 현장의 혼란을 헌재 재판부에 설명했어야 한다. 만약 법리공방이 마무리 됐다는 걸 알고도 가만히 있었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밝혔다. 이어 “직무유기가 헌재에 13쪽짜리 자료를 냈다고 면피가 되는 것이 아니”라며 “이미 질 재판이라고 생각하고 제주도에서 만찬을 벌인 것에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의 각종 불법, 탈법 행위, 반 언론적 행태 등에 대해 철저한 진상을 파악해 책임을 묻겠다’는 경영진 입장에 대해선 KBS본부는 “바깥에서 수신료 분리고지와 2TV 분리를 주장하고, 회사 주변에 조화를 둘러치도록 선동하고, 회사 로비를 유튜버 놀이터로 만든 자들부터 책임을 물으라”며 “구성원 동의 없이 ‘불공정 보도 사례’를 방송하고 세월호 다큐 불방으로 시민들의 질타를 받고, ‘역사저널 그날’의 파행을 야기한 자들이 누구인지부터 규명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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