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 가운데 ‘요리부심’이 있다. 아펜니노 반도에서 멀어질수록 미각에 관해서만큼은 타협하지 않은 보수성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거나 까르보나라에 베이컨을 넣는 행위는 신성모독으로 간주되고, 우리가 아는 피자 상당수는 유사피자 딱지를 면할 수 없다. 그들의 자부심은 ‘테이스트아틀라스가 선정한 미식국가 1위’(2024년 기준) 같은 타이틀을 통해 뒷받침되곤 한다.
그런데 어느날 농월정(弄月亭) 사장님이 고기를 내려놓으며 지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탈리아에서 온 교수 양반이 우리집에서 먹고, 나중에 한국에 다시 왔을 때는 가족을 데리고 왔어.” 그리고 또 어느 날은 계란찜을 들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번은 이탈리아 여행객이 왔는데, 일주일 동안 네 번을 오더라니까, 글쎄.”
놀라운 이야기였으나 단골손님으로서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서울 성북구청, 성북경찰서, 성북천과 인접한 골목 그 자리에서 얼마 전 만 20년을 넘긴 농월정의 간판 메뉴는 묵은지삼겹살(국내산 180g에 1만5000원)이다. 이 동네는 관광지가 아니고, 국내외 브이로거들 사이에 소문난 핫플레이스도 뭣도 아니지만, 농월정은 다국적 충성 고객들의 한결같은 지지에 엄혹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영업제한 기간에도 적자를 면하며 세월을 견뎠다.
‘농월정’은 조선 중기 경남 함양의 문신 박명부가 병자호란의 굴욕적인 강화를 목도한 뒤 낙향하여 지은 정자의 이름인데(디지털함양문화대전), 사장님이 여기서 가게 이름을 가져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벽 사방에는 손수 지으신 시가 붙어 있다. 어떤 것은 사인펜을 휘두른 손글씨이고, 어떤 것은 A4 용지에 프린트한 굴림체인데, 서체와 재질에 관계없이 시구에 배어든 풍류가 고기맛을 돋운다. 이탈리아인도 중국인도 성북구민도 이 맛에 취한 것이리라.
2015년 3월작 ‘이해’에서 가장 애정하는 구절을 인용하며 줄인다.
“이렇듯 달랐지만/ 서로는 이해를 했고
내가 도레미파하면/ 넌 솔라시도를 불렀지
나 머지않아 꽃잎지고/ 낙엽으로 뒹굴 때
슬픈 네 노래는/ 행복한 내 웃음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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