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선 패배 이후, 또 1년 9개월 만의 언론과 대면 자리는 큰 기대를 받았지만 질문매체 편중을 비롯해 형식, 내용면에서 여러 질타를 받았다. 누적된 ‘불통’이 한 번에 해소되긴 불가능하단 사실을 확인한 만큼 이번 기자회견을 계기로 소통 기회를 넓히고, 나아가 언론자유를 위축시켜 온 대언론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150여명의 기자가 참석, 73분여 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이번 기자회견은 종료 후 곧장 질문매체 편중 논란에 휩싸였다. 종합일간지 4곳(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한국일보), 경제지 4곳(매일경제·머니투데이·서울경제·한국경제), 외신 4곳(AFP·BBC·니혼게이자이신문·로이터), 통신사 2곳(뉴시스·연합뉴스), 방송사 4곳(KBS·SBS·TV조선·연합뉴스TV), 인터넷신문 1곳(아이뉴스24), 지역신문 1곳(영남일보) 등 총 20개 언론에서 20개 질문이 나왔는데 현 정부에 비판적인 매체가 질문하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한겨레를 제외하면 진보 성향 언론이 지목되지 못했다. 보수 신문 중 조선·중앙일보는 질문했지만 상대적으로 비판 기조가 셌던 동아일보는 하지 못했다. 특히 윤 대통령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보도,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등과 관련 있는 MBC는 기회를 못 얻었다. 기자회견에서 손을 들었지만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한 강연섭 MBC 기자는 이날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듣고 싶은 걸 제대로 답하지 않았고, 더 물을 수도 없었던 기자회견이었다”면서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걸 소상히 설명한다는 당초 예고와 조금 달랐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출입 지역기자들도 “금일 기자회견 질문자 선정에서 대통령실 출입 ‘지역언론’이 철저히 소외된 데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9일 입장문을 냈다. 2022년 윤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당시 12명 질문자 중 1명만 지역언론에서 선정되며 이들은 대변인에게 구두로 문제제기를 했는데 이번에도 단 1명만 질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외신도 4개사가 질문했다는 점을 들며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지방시대를 표방하면서도 지역의 목소리는 얼마나 외면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고, “향후 이 같은 지역언론 홀대가 시정되지 않을 경우 강력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적었다.
국정 기조 변화가 천명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소통의 형식면에서 ‘전향’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비판 이면에 있다. 종합일간지, 경제지, 방송사, 외신 등 분류상 질문 배분은 이뤄졌지만 정말 변화를 보여줘야 할 대(對) 비판언론 인식엔 ‘시그널’을 주지 못하고 무난한 행사 진행에 골몰한 모양새여서다. 중소·지역매체에 대한 홀대도 누차 제기됐지만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정치분야 30여분, 외교·경제·사회 각 10여분씩 나눈 구분, 추가 질문 제한 등에 따라 집중 질문이 불가했고 원론적 질의응답이 나왔다는 ‘룰’에 대한 질타, 경제·외교분야 질문을 경제지·외신기자에게만 시키며 다양성·국익관점 부족 평가도 나왔다.
신문사 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아주 오랜만이고 달라진 소통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고, 언론통제 얘기도 나온 상황에서 비판 매체를 1곳만 넣은 데 아쉬움이 있다. 아예 작정하고 그런 매체의 질문을 앞에 몰아넣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었는데 그런 판단은 없었다”면서 “핵심 이슈는 대통령이 더 궁금한 게 없냐고 물으며 열어주는 형식이나 추가로 자세히 답하는 방식도 가능했을 텐데 결과적으로 불통을 종식시킬 첫걸음으로 전향적이지 못했다”고 했다.
내용면에서도 <특검도 소통도 ‘마이 웨이’, 기자회견 왜 열었나>(한겨레), <특검 충돌도, 의정 갈등도, 연금 개혁도 해법 못 낸 尹 회견>(동아일보) 등 사설처럼 비판이 나왔다.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란 조선일보 평가가 그나마 긍정적이었다. 외신인 BBC 서울 특파원 진 맥킨지 기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임기 중 두 번째 기자회견이다. 정말 적은 횟수”, “(윤 대통령이) 많은 질문에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표적감사, 언론사 압수수색, 언론자유 지수 하락 등 한국 언론자유 위축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데 지적도 나왔다. 다만 복수의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을 취재한 결과 상당수는 해당 질문을 준비했지만 기회를 못 얻었거나 다른 현안을 우선 질문하며 기회를 못 얻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누적된 ‘불통’을 한 번에 불식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과제를 남겼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 지목으로 진행된 회견방식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게 질문을 받을 것”이라 했지만 대신 “질문자를 가린 것 아니냐”는 시선에서 현 정권의 소통에 대한 언론계·국민 전반의 의구심을 방증한다. 실제 얼굴 사진 등이 포함된 문서가 대변인 단상 위에 놓인 영상 장면이 확산되며 대통령실에서 ‘외신기자 이름 확인을 위한 것’이라 해명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배제가 의도됐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대변인의 기자회견 진행은 이례적이지 않고, 사전 대통령실과 기자단이 질문자나 순서, 내용을 조율한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데도 이런 비판이 나오는 원인은 결국 과거 행보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또 다른 신문사 한 출입기자는 “소통 기회를 늘리겠다는 건 당연히 반가운 일이고, 총선 뒤 브리핑이 늘어나는 변화 등은 분명 지난 2년과 구분되는 모습”이라면서도 “결국엔 언론사를 대하는 태도, 언론과 관계하는 ‘내용’이 달라져야 평가받을 수 있겠다. 압수수색을 하고 탄압을 하는데 불신이 나아지겠나. 소통 확대를 시작으로 언론관이 바뀐 신호까지 나타나야 진정성이 있을 텐데, 저는 회의적”이라고 했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