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당시 보도국 기자들을 편 가르고 비판여론을 입막음해 정직된 KBS 간부들의 중징계가 취소됐다. 징계가 정당하다는 1심 판결이 나왔는데도 2심에서 KBS가 패소에 가까운 조정에 임한 것이다. 징계가 취소된 이들 중에는 장한식 현 보도본부장도 포함돼 있다.
2020년 KBS를 상대로 제기된 징계처분 무효확인 소송에서 징계를 취소하는 법원 조정 결정이 2월15일 확정됐다. 원고는 4명으로 당시 정지환 전 보도국장은 정직 6개월, 박영환 전 취재주간은 정직 5개월, 당시 방송주간이었던 장한식 보도본부장과 국제주간이었던 강석훈 현 부산방송총국장은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았다. 정 전 국장은 결격사유가 해소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비상임 이사로 3일 임명되기도 했다.
이들의 징계 사유는 인사권을 무기로 친정부적인 보도를 비판하는 기자들을 억누르는 등 직장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보도국 국·부장단이 모두 가입한 ‘KBS기자협회 정상화 모임’ 결성을 주도했다. 정연욱 기자가 기자협회보에 KBS를 비판하는 글을 투고한 뒤 제주총국으로 부당 전보발령을 내기도 했다.
KBS는 정권이 바뀐 뒤 2019년 적폐청산 기구인 ‘진실과미래위원회’(진미위)를 만들어 이들 핵심 간부 4명을 비롯해 모두 17명을 징계했다. 2022년 8월 서울남부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없어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이에 KBS 간부 4명은 항소했다.
상황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김의철 사장 해임과 동시에 급선회했다. 선고 전날인 지난해 9월12일 김 사장에 대한 해임 제청안이 여권 우위의 이사회에서 통과했고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했다. 2심 재판부는 다음 날 예정된 선고를 미뤘다.
이후 박민 사장 취임 보름 만인 지난해 11월29일 판결이 아닌 조정이 이뤄졌다. 이미 퇴사한 정 전 국장과 박 전 취재주간에게는 KBS가 5~6개월 치 미지급 임금 4300만원 가량을 주고, 현직인 장 보도본부장과 강 총국장은 징계를 취소한다는 내용이다. 이들 두 명의 1개월 급여 650만원 가량은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합의했다.
1심 결과에 비춰 KBS가 일방적으로 양보한 것이 아닌지, 이에 따른 배임 가능성을 검토했는지 질문에 KBS는 “외부 법률자문을 거쳤다”고만 짧게 답했다. KBS 측 변호사는 KBS 관련 사건을 계속 수임하고 있어 답변이 어렵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원고 측 우인식 변호사는 “야권 우위의 KBS이사회에서 진미위 활동이 잘못됐다고 반성하는 2022년 경영평가보고서가 발간됐다”며 “새로운 사정이 발견된 이상 1심 결론이 유지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경영평가보고서는 1심 판결 이후인 2023년 6월 나왔다.
경영평가보고서에 들어간 진미위 관련 내용은 당시 경영평가위원으로 참여했던 김백 전 YTN 총괄상무가 관여했다. “회사가 진미위와 관련해 사과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진미위가 생겨 똑같은 불행이 반복”된다는 내용이다. 이사회가 이 보고서를 최종 승인하긴 했지만 다른 쟁점을 두고 논쟁하느라 미처 문제 삼지 못했다.
하지만 경영평가에 참여한 다른 위원은 “초안은 진미위 활동 자체를 불법으로 오해하게 적혀 있었다”며 “진미위가 옳고 그름을 떠나 화합하자는 뜻이고 그래서 다른 위원들이 ‘대승적’이라는 단어를 넣어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부 위원의 권고와 제안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경영평가서는 양승동 전 사장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벌금 300만원이 확정된 사실도 언급하고 있다. 양 전 사장은 진미위 활동을 방해하거나 조사에 불응하면 징계한다는 진미위 운영규정 13조항을 노조 동의 없이 만들어 문제가 됐다.
이지수 변호사는 “양 전 사장이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이 사건 항소심이 판결을 바꿀 이유가 전혀 되지는 않는다”며 “양 전 사장 사건은 13조항만 문제 됐는데 이번 징계에는 해당 조항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판결은 진미위 활동 전체가 불법이라는 취지는 아니었다.
이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려면 1심 판단에 법적 오류가 있어야 한다”며 “진미위 징계 이후 사내 갈등이 심각해져 화합이 필요했다는 경영평가위원 제안은 당시 징계가 위법했다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심판결을 취소하는 취지의 불리한 강제조정 결정이 나왔으면 이의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대로 수용한 건 매우 이례적이고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 본부장은 “완전한 패소에 가까운 KBS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정”이라며 “사측이 왜 조정안을 수용했는지 상식과 어긋난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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