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젠더 버티컬 브랜드 ‘플랫’은 독자(애칭, 입주자)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기획 ‘입주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성 우선주의에 반기를 들고 어머니의 성·본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를 하는 ‘엄마 성 빛내기’를 시작했고, 올해 4월부턴 두 번째 프로젝트인 ‘진도믹스견과 산책하는 여자들’을 추진 중이다. 모두 독자들이 직접 플랫에 문을 두들겨 제안한 프로젝트다.
플랫팀 기자들은 입주자 프로젝트를 통해 주요 독자인 2030세대 여성들을 직접 만나며 이들의 특징을 확인했다. 일단 판을 깔아주니 “사람들이 모인다” “이 사람들은 활동성이 크고” “관여도가 높다”. 실제로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 당시 플랫팀은 법원에 성·본 변경을 청구할 신청자를 받았는데 170여명(최종 신청자 137명)이 몰렸다. 해당 프로젝트 기획자이자 독자인 김준영 그림책 작가의 주도로 자료집·굿즈 제작, 세미나·기자회견 준비 등을 하는 13명의 스탭이 자발적으로 모였고, 변호사 6명은 자문단을 자처하며 신청자들을 도왔다. 플랫팀에겐 “모르는 사람한테 공을 계속 던지고 있었는데 이제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경험이었다.
2020년 3월8일 ‘여성 서사 아카이브’로 시작해 4년차를 맞은 플랫이 독자와의 연결 짓기에 나서며 채널·브랜드 활성화, 비즈니스 모델 확대 등 발돋움을 꾀하고 있다. 본래 경향신문 기자들이 생산하는 젠더 관련 기사·콘텐츠를 재가공해 모아놓는 뉴콘텐츠팀 산하 플랫폼 개념이었던 플랫은 지난해 9월 팀장(임아영 젠더데스크 겸임) 포함 기자 3명으로 구성된 별도 조직으로 분리됐다. 앞서 지난해 5월 임 팀장이 진행한 플랫 독자 18명 대상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토대로 플랫폼 고도화를 위한 중장기 작업을 담은 보고서가 팀을 만든 계기였다. 입주자 프로젝트라는 아이디어가 생기고, 첫 번째 프로젝트 기획자인 김준영 작가를 만난 것도 이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임아영 팀장은 “독자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추출하는 작업을 한 건데 독자들에게 플랫은 ‘연결, 관점, 공간’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었다”며 “디지털 환경이 되면서 뉴스라는 상품은 더 면밀하게 독자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언론사가 여러 기회들을 놓치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살려 플랫 독자들과는 쌍방향으로 뭔가를 같이 해볼 수 있겠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선 플랫이 없어질까 봐 걱정돼서 왔다는 독자도 계셨다. 여성 독자는 뉴스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의문이 들었다”며 “오히려 2030 여성이 활자 매체에 돈을 지불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일 수 있다. 정작 한국 언론이 비가시화 된 여성 독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걸 수 있다”고 했다.
플랫팀 기자들은 입주자 프로젝트를 공동 기획하면서도 “독자의 관심 의제를 소개하고, 이들이 하나하나 해나가는 행동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독자와의 접점을 만들고 싶다는 취지를 강화하다보면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도 있다. 그럼에도 높은 독자 참여도와 어느새 늘어난 수많은 조력자들을 보며 임 팀장은 “기자 입장에서 보기에 ‘마이너’한 이슈인데 독자들은 이런 사안에 관심이 많구나 싶어 놀랐다. 오히려 제가 주류 중심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플랫의 “사실상 본진”인 인스타그램 계정(@flatflat38)은 팔로워 수 1만명을 확보할 정도로 성장했다. 독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은 버티컬 브랜드가 지속될 수 있고, 사업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임 팀장은 “아직 굉장히 적은 금액이지만, 뉴스레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출판사, 영화사 등에서 광고·협업 요청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2030 여성이라는 확실한 타깃이 있기 때문”이라며 “입주자 프로젝트로 ‘일단 사람이 모인다’는 좋은 지표를 확인했는데 이제는 플랫이 무엇을 더 해야 할 수 있을지가 남아있는 숙제다. 하반기 후원성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