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업에서 제작만 해온 PD다. 보직을 맡아본 적 없다. 지금 회사에서 적으로 여기는 연봉 1억 넘는 무보직자다. 담당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이번 주에도 8일 연속으로, 3일 휴일을 통으로 근무했다. 그런데도 저 같은 사람은 구조조정 대상이고, 개편 대상인 거냐. 급여는 유지된다고 하지만 그 다음은 조직 개편, 거기에 따른 급여 조정 단계를 밟으려는 거 아닌가?”
“감사원, 방송통신위원회가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설계한 제도에 대해 ‘고연봉 무보직자’ 프레임을 그냥 없던 일로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는지 일단 궁금하다. 이 제도에 동의를 받으려고 세대 갈라치기 하는 건 조직을 망가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19일 KBS가 전 사원 대상으로 개최한 ‘직급체계 및 승진제도 개선’ 설명회. 박민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춘호 전략기획실장의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시니어, 주니어를 가리지 않고 경영진을 향한 성토가 나왔다. 결국 이날 설명회는 “떨어진 프로그램 경쟁력부터 고민하라”며 사측의 개편안에 반발하는 구성원 고성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사측은 7월1일 새로운 직급체계 및 승진제도 도입을 목표로 직원 동의 투표를 시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현재 KBS엔 과반 노조가 없어 사측이 직급체계 개편, 조직개편 등을 시행하려면 직원 과반의 동의와 이사회 의결 절차가 필요하다.
‘직위·직급 일치형 직급체계’, ‘보직 임용 시 ‘대우’로 일정 기간 평가’ 등을 골자로 한 이번 개편안은 특히 박민 사장 취임 전 조직 장악 지침이 담겼다는 의혹으로 파문을 일으킨 ‘KBS 대외비 문건’ 속 내용과 동일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KBS 직급체계는 실무직급(평직원)인 G7~G0, 책임직급인 M3~M1(팀장~센터장급)으로 구성돼 있다. 연차별 비율에 따라 승급되는 실무직급이 보직을 맡으면 M직급으로 이동하고, 보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실무직급으로 배치되는 변동형 직급체계다.
사측은 현행 11개 직급을 9개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책임자급(M3~M1)은 팀장~국장직급으로 나누고, 8개 직급인 실무자급(G7~G0)은 5개 직급(7직급~3직급)으로 한 고정형 직급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직위 중심으로 승진 제도를 변경하는데 책임자급부터는 승격 발령 후 1년 간 평가를 통해 승진시키는 ‘대우 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3직급 이상은 승격 발령 후에도 ‘대우’ 기간 평가를 거쳐야 책임자급인 팀장직급으로 승진할 수 있고, 부국장직급은 국장직위 경력 3년(대우1년 포함) 이후 국장직급으로 승진이 가능한 구조다. 책임자급에 오른 사람은 보직을 맡지 않아도 해당 직급에 잔류한다.
이번 사원 설명회에 앞서 사측은 각 노조를 찾아 직급체계·승진제도 개편 추진안에 대해 설명했는데,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 같이노조는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 ‘직원 줄 세우기’ 등의 비판을 내놓으며 사측에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17일 성명에서 사측이 제시한 ‘직상위자, 차상위자, 차차상위자로 평가자를 확대하는 3차 역량평가 도입’에 대해 “평직원의 경우 팀장과 부장의 평가만 받으면 되지만 앞으로는 국장 평가까지 받게 되는 것”이라며 “현 박민 체제의 책임자이자 평가자인 보직자들의 권한과 대우는 강화하고, G3(대졸 신입 기준 5~8년차) 이하 평직원들은 보직자들의 뜻을 거스르기 힘든 구조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같이노조도 17일, 19일 성명을 내어 “능력과 성과보다는 진영을 우선시하는 인사 악습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유명무실한 안”이라며 “회사가 지난 반년 간 낸 인사는 진영 챙기기에 더 가까웠다. 능력주의 인사와 공정한 평가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회사의 개편안은 줄 세우기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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