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 ‘학생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라든지 ‘연구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가끔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때도 있다.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끔 직업에 관한 정체성을 고민할 때 더 뉴요커(The New Yorker) 저널리스트 애보트 조셉 리블링(Abbott Joseph Liebling)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글을 더 잘 쓰는 사람보다 더 빨리 쓸 수 있고, 더 빨리 쓰는 사람보다 더 잘 쓸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드러내는 리블링의 말과는 달리, 내 경우에는 나보다 기술에 관해 잘 이해하는 사람도 많고, 나보다 빠르게 글을 더 잘 쓰는 사람도 많다.
부족하지만 먹고 살고 있는 걸 보면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글을 찍어내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직업적 정체성을 더 잘 설명하는 단어는 번역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번역하는 사람은 한 분야의 지식을 다른 분야의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한다. 예를 들면, 내가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간단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이것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중요한지 설명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 어떤 질문이 중요하고, 흥미로운 질문이 어디에 있으며, 이러한 답변을 요구하는 독자가 누구인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그렇다면 기자는 글을 쓰는 사람일까 번역하는 사람일까? 기자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은 언제나 강조되었다. 글쓰기가 사건의 의미를 대중에게 적절하게 전달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 기자도 펜으로 기사를 작성하지는 않지만, 펜 기자라는 말이 기자를 상징하는 말처럼 사용되었던 이유다. 여전히 신문 사설에서 언론을 펜으로 비유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글쓰기의 위상이 과거처럼 높아 보이지 않는다. 기자 개인이 일주일에 작성하는 기사의 평균이 2023년도 조사 기준 25.7건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빠르게 글을 쓰는 것만으로 1930년대 리블링의 말처럼 자부심을 느끼는 기자가 되기는 어렵다. 이미 빠른 글쓰기라면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년 언론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무 수행 시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기자는 54.3%로 절반을 약간 넘어선 수준으로 나타난다. 생성형 AI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야에 관한 질문에서 ‘자료의 수집과 분류에 활용한다’라는 문항이 35.5%로 가장 많았다. 결과만 보면 AI에 글쓰기를 맡기는 기자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기사 작성 초안에 활용한다는 문항이 빠져 있어 실제 기자의 생성형 AI 활용이 어떤지는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글쓰기를 위한 아이템 구상과 자료 분류 및 정리에 AI를 활용한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조사에서 생성형 AI가 뉴스룸에 필요하다는 응답은 전체의 60.4%,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9.2%에 머물러 향후 AI의 활용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자를 펜에 비유하는 수사도 점차 사라져갈지도 모른다. 현재 생성형 AI의 성능을 보고 글쓰기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고, 글쓰기는 기자 본연의 업무이기 때문에 생성형 AI 활용에 윤리적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AI를 보면, 글쓰기의 대체 불가능성을 장담하는 것은 마치 1900년에 비행기에 관한 법률 규제 논문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아마 기자의 글쓰기가 온전히 빠른 글쓰기에만 머무른다면 AI에 대체되는 기자 대부분이 AI로 대체되는 미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것이다.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빠르기라기보다는 잘 쓰는 방식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오피니언도 AI에게 부탁했으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은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모으고 독자를 고려하며 직접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AI는 잘 쓰는 방식에 관해서는 고민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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