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번 선거에서 쓸 만한 질문을 던졌는가

[언론 다시보기]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전성원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

선거가 끝났다. 선거를 앞두고 신문사나 방송사는 총선 보도를 위해 부서를 개편하고, 인력을 확충하며 불철주야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회식을 하고 휴가도 보내준다. 언론인 여러분, 고생 많으셨다.


선거 직후에 읽은 여러 칼럼 중 기후운동가 김현우 선생이 올린 <모두 텃밭으로 가자>라는 글이 와 닿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칼럼을 공유하며 당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코멘트가 마음에 들었다. “좋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은 밭을 원망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하기엔 너무 쉬운 이야기고. 어쨌든 총선 전후로 써야 하는 칼럼은 원고료를 두 배 이상 받아야 한다고 생각함”이란 내용이었다. 솔직히 처음 눈길이 머문 것은 선거 전후에 쓰는 칼럼은 원고료를 두 배 이상 줘야 한다는 글귀였지만, 그보다 마음이 머문 내용은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은 밭을 원망하는 마음”이란 말이었다. 이 말은 오늘날 현장에서 일하는 언론인의 마음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선거 직전 직후에 쓰는 칼럼은 정말 원고료를 두 배 줬으면 좋겠다. 선거 직전에는 영험 없는 점쟁이가 될 위험을 각오해야 하고, 선거 직후에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각설이가 될 운명에 처하기 때문이다. 선거 직후 쏟아지는 언론에 대한 불만이나 비판은 대동소이하다. 언론은 공명선거를 위한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하고, 편향성에서 벗어나 유권자의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제공해야 하며, 중요한 선거 이슈를 찾아내 공론장으로서 시민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언론은 올바른 선거문화에 기여하며 민주주의의 성숙에 이바지한다. 하도 판에 박힌 이야기라 반복하는 입장에서도 지겹고, 듣는 이들도 선거가 끝나면 항상 들어오던 비판이다. 이쯤 되면 언론인도 밭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법하다.


문제는 관행이다. 해마다 소화해내야 하는 보도의 절대치는 증가하는 데 비해 보도의 질이 떨어져 저널리즘의 연성화를 가속화한다. 후보자 따라 다니기, 전쟁처럼 단순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보도 태도, 유의미한 정책 이슈 탐구가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지지율만 쫓는 경마식 판세 예측 보도 양태가 그러하다. 관행은 힘이 세다. 관행이란 ‘오래전부터 해오던 대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행을 되풀이해온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주변에 불편을 주지 않으며 어쨌든 언론도 주목경쟁기업이기에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선을 받아야 한다. 관행은 한순간에 바꿀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이미 인식으로 굳어진 ‘문화’의 영역이다.


잡지를 내고나면 항상 틀린 것이 나온다. 낯선 문구나 용어는 사전을 비롯해 갖가지 자료들을 찾아서 대조해보고 확인하기 때문에 실수를 범하는 일이 적은 편이다. 문제는 항상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들이다. 잘못되었다는 문제의식이 없기에 ‘모든 것에 의심을 품고 확인해보라’라는 교정교열의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는다. 변명거리는 있다. 시간이 없다. 충분한 인력 확보가 어렵다. 일일이 확인하다보면 마감 시간을 지킬 수 없다거나 현장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관행이 힘 센 이유는 아예 의문조차 품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의문을 품어봤자 현재의 언론 환경과 구조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무기력이다. 이때의 관행이란 다양한 권력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를 통제하는 학습당한 패배의식이 된다. 게다가 요즘엔 특정한 정치 편향을 대놓고 광고하는 인플루언서, 유투버의 말 한 마디가 언론보다 신뢰받고, 언론사보다 여론조사에 더 많은 돈을 쓴다고 자랑하는 시대가 아닌가.


이런 시대에 그, 그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가? 그런 일들은 저들에게 맡겨두고, 우리 언론은 정치와 저널리즘의 본질에 의문을 품고 집요하게 질문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질문이 정답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목숨을 구할 방법을 단 한 시간 안에 찾아야 한다면 나는 올바른 질문을 찾는 데 55분을 쓰겠다”라고 했다. 그 질문은 꼭 필요한 것인가? 그 질문은 핵심을 건드리고 있나? 그 질문은 우리 모두 이 주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인가? 텃밭을 지켜야 한다면, 텃밭에 대해 질문하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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