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블랙리스트는 엑셀 파일이다. 정연하게 배열된 1만6450명, 건조하지 않은 사연들이 있었다. 첫 보도까지 84일이 걸렸다. 기업과 제도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였던 까닭이다. 한 달간의 전화 인터뷰, 다시 한 달간의 현장 취재를 통해 많은 삶을 접했다. 담아내지 못한 울분과 억울함에 사죄드린다.
쿠팡 블랙리스트는 인사평가 자료가 아니다. 퇴직자,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인사평가라니 가당찮다. 정당하지도, 합법적이지도 않은 까닭일까. ‘PNG 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Persona Non Grata, 기피 인물을 뜻하는 외교 용어와 적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채용과 해고는 회사의 고유 권한이다. 누군가를 선호하고, 기피할 수 있다. 다만, 공동체가 약속한 최소한의 규범, 법은 지켜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40조는 취업 방해를 금지한다.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PNG’와 ‘대구센터’라는 비밀 기호는 차치하자. 분명 쿠팡은 1만6450명의 명부를 작성했고, 사용했다. 내부 전산망으로 통신까지 했다. 취업을 배제할 목적이었다. 일용직 노동자의 개인정보를 7년째 보관한 행위 역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고용노동부, 경찰과 검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불법을 단죄해야 할 감독기관은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다.
쿠팡은 ‘총알 고소’로 답했다. 쿠팡대책위 4명, 내부고발자 2명, MBC 기자 4명은 차례로 쿠팡의 과녁이 됐다. 예견했던 수순이지만, 숨 가쁜 속도전은 솔직히 놀랍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쿠팡 블랙리스트의 실체적 진실을 법정에서 다툴 수 있으니 말이다.
MBC 조의명, 김건휘, 정혜인 기자. 외압과 소송에 굴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 정신을 가진 동료들이다. 석 달 동안 묵묵히 지켜보고 지원해 준 뉴스룸 국장, 경제팀장께도 감사드린다. 영상취재팀, IT솔루션팀, 리서처 등 MBC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 낸 기사다. 쿠팡 대책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도 감사를 전한다. 양심을 배신하지 않고, 용기 내준 내부고발자가 없었다면 쿠팡 블랙리스트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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