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부터 계속된 폭설과 한파로 산양들이 최대 서식지인 설악산을 벗어나 저지대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2월1일 환경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강원도 인제군 미시령 인근 설악산 남사면을 찾아 야생 산양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날 오전 일찍 시작한 산양 취재는 폭설로 인해 정오 무렵에 마무리됐다. 먼 거리에서 힘없이 먹이 활동을 하는 산양을 망원렌즈로 담을 수 있었지만, 그대로 복귀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활동가들이 떠난 후 다시 취재를 위해 혼자 눈 덮인 산을 올랐다.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 무릎까지 빠지는 산을 헤매는 동안 청바지와 운동화가 젖었고, 체온까지 떨어졌다.
얼마나 올랐을까. 무심코 시선을 던진 곳에 암컷 산양 한 마리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었지만, 셔터 소리에 놀라 달아날까 우려해 경계심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 시간을 가만히 서 있다 몇 발자국씩 다가가 거리를 좁혔다. 다시 또 삼십여 분을 기다려 거리를 좁혔다. 큰 동작과 소음으로 인해 어렵게 만난 기회를 놓칠까 조심했다.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조용히 산양을 지켜봤다. 시간이 흐르자 산양이 경계심을 풀었고 이내 나를 향해 다가와 먹이 활동을 이어갔다.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사진기자들이 숱하게 산양 취재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육안으로도 보기 힘든 산양을 광각(근접)렌즈로 담을 수 있었다.
이 취재는 산양의 서식 환경이 기후 위기와 오색케이블카 설치로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에 농경지와 민가까지 내려온 산양들이 포착되기도 했다. 추가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도 집단 폐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기사도 나왔다. 모두 인간이 만들어 낸 요인들로 인해 산양이 그 피해를 본 것은 아닐까. 이제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을 가까이서 취재하는 일이 썩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다.
성동훈 경향신문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