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4월15일 출항하기까지 있었던 일은 승객의 생명을 걸고 하는 ‘모래뺏기’ 놀이와 같았다.” 세월호 10주기에 출간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결론을 이렇게 썼다.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풀어준 정부, 18년 된 배를 들여온 해운사, 증개축을 문제 없이 지켜본 허가와 규제기관, 화물은 더 싣고 평형수는 빼고 다닌 선장과 선원, 이들의 편의를 봐준 해경. 이들이 야금야금 돌아가며 모래를 뺏는 사이 세월호는 이미 쓰러질 상태가 됐다. 6000톤이 넘는 여객선을 넘어뜨린 건 큰 외력이 아니었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 2016년 발간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1일 새로 펴냈다. 정은주 한겨레 기자에 이어 개정판에는 김성수 뉴스타파 기자가 5명의 필진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정부가 세 차례 꾸린 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 선체조사위, 사회적참사특위)에 참여한 교수와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함께 집필했다. 세월호 진상을 담은 민간 보고서인 격이다.
개정판에는 세월호 침몰 원인이 상세히 담겼다. 세월호는 조타장치가 고장 나 방향타가 꺾인 채 고정됐다. 하지만 정상적인 배였다면 원을 그리며 돌다가 시동을 끄면 자리에 똑바로 서야 했다. 설령 복원력을 잃고 옆으로 누웠더라도 수밀문만 잘 닫혀 있다면 그 상태로 가라앉지 않는다. 침몰은 오랜 시간 너무 많은 위험이 배 안에 쌓인 탓이었다.
10년 동안 세월호 사건을 취재한 김성수 기자는 2017년 세월호가 인양된 뒤 만들어진 선체조사위 내부의 ‘외력설 그룹’을 비판해 왔다. 선체조사위가 이미 충분한 결론을 얻었지만 이들 그룹이 주장하는 또 하나의 보고서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뒤이어 출범한 사회적참사특위에서도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찾을 때까지 ‘기우제식’ 조사를 계속했고, 끝내 진실을 찾지 못한 것처럼 됐다는 것이다.
선조위가 두 개의 보고서를 낸 이유는 유가족이 바라는 결론을 저버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3일 서울 중구 정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기자는 “선체조사위가 최선의 설명을 할 수 있었지만 (유가족을 고려해) 정무적으로 판단했다”며 “유가족과 진상규명 운동을 끌고 왔던 쪽에선 이 책에 호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이미 드러난 세월호 침몰 원인이 대중에게 공인받아야 하고, 여기에 언론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단순히 두 개의 보고서를 나란히 전할 것이 아니라 외력설은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검증해 보도했다면 불신과 음모론은 줄이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은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여느 책처럼 쉽게 읽힐 수 있게 썼다. 관련자 관계도와 주요 재판 결과, 전문용어도 망라해 넣었다. 기소되지는 않았더라도 조금씩 잘못이 있는 사람이라면 낱낱이 실명을 밝혀 적었다.
침몰 원인과 함께 구조 실패 원인 규명은 이 책을 구성하는 다른 축이다. 책은 해경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무능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단지 책임자 몇을 찾아 처벌하고 말 것이 아니라 과정 전체에서 교훈을 찾아 내는 것이 진정한 참사 조사라고 강조한다.
조용환 진실의 힘 이사는 “중요한 보고는 무시되는데 불필요한 지시사항은 전달되면서 지휘보고체계가 먹통이 됐다”며 “우연히 그때 해경만 보인 무능이 아니라 공적 조직이 가진 병적인 증상이다. 왜 이런지 해명해 내는 게 우리가 얻을 가장 큰 교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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