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방송 체제를 단절하고 우파 중심 인사로 조직을 장악하라는 내용 등이 담긴 ‘KBS 대외비 문건’이 나왔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KBS는 이 문건에 따라 KBS를 망가뜨리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겨온 것이 아닌지 강하게 의심이 든다”고 했다. KBS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괴문서”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3월31일 MBC ‘스트레이트’ 보도와 1일 언론노조 KBS본부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된 ‘위기는 곧 기회다’ 제목의 문건은 18장짜리로 △사장 제청 즉시 챙겨야 할 현안 △사장 취임 즉시 추진해야 할 사안 등 크게 두 가지 챕터로 구성됐다.
이 문건엔 ‘임원, 자회사 사장, 감사, 국장급 직위는 가능한 우파 등용’, ‘이번 단체교섭은 주요 실·국장에 대한 임명동의제를 비롯한 독소조항들을 과감하게 폐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등이 언급됐다. 특히 ‘KBS 정상화’, ‘방송구조 개편(KBS 공중분해)’ 등의 이름으로 단계별 조직 장악 지침이 담겨있다.
해당 문건을 입수한 언론노조 KBS본부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문건에 담긴 내용은 단순 계획으로 끝나지 않고 박민 사장 취임 후 상당 부분 실현되고 있다”고 밝혔다. KBS본부 기자회견 자료를 보면 ‘박민 체제’ 보직 간부 중 KBS본부 조합원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사장 제청 즉시 챙겨야 할 긴급 현안’으로 제시한 “국민 신뢰 상실에 대한 진정성 있는 국민담화(사과) 준비”는 박 사장 취임 하루 만인 지난해 11월14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으로 실행됐다.
KBS본부는 2월29일 사측이 노조에 제시한 단협안이 문건 속 내용과 판박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엔 “단체협약 무협약 상태까지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사측에서 단체협약의 채무적 효력(조합비 공제 협조)을 지렛대(볼모) 삼아 단체교섭의 주도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음”, “임명동의 대상인 보도국장 등 5명은 사장 의지대로 임명하되, 임명동의를 받지 못할 경우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발령을 강행하는 것도 고려할만 함” 등이 들어있다.
KBS본부는 “사측이 조합에 제시한 2024 단협 개정안을 보면, 사측은 주요 국장의 임명동의제와 본부장·총국장 중간평가에 대한 조항을 아예 통째로 덜어냈다”며 “단협 조항은 일방 통보로 수정하는 등 공정방송을 위한 조치들을 대거 손보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BS본부는 해당 문건이 “KBS 문서 양식이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내부 인력이 아니라면 파악하기 힘든 KBS의 내밀한 정보가 들어있어 문건 작성자 중엔 내부 조력자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확인 결과 이 문건은 실제로 국장급 직위가 하급자에게 참고하라며 건네는 등 사측 간부 사이에서 유통됐다”며 “평직원 중에도 이 문건을 열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MBC ‘스트레이트’는 “문건을 제공한 KBS 직원은 ‘고위급 간부 일부가 업무 참고용으로 공유하고 있는 문건’이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문건에는 “단기적으로는 ‘KBS 정상화(파괴적 혁신)’, 중기적으로는 ‘방송구조 개편(KBS 공중분해)’ 예상”이라고 적시돼 있다. KBS 정상화 주요 내용으로 “민주노총 언론노조 KBS본부 중심의 노영방송 체제 단절”, 방송구조 개편엔 “현행 KBS 체제를 1공영, 1민영 등으로 방송구조 개편” “2TV는 민영화” 등이 제시됐다.
이춘호 KBS 전략기획실장은 2일 KBS에서 긴급 간담회를 열어 “MBC 스트레이트에서 방송한 KBS 관련 괴문서는 KBS와 전혀 관련이 없다. 그 내용 또한 대부분 허위”라며 “KBS는 근거 없는 내용을 보도한 스트레이트 제작진과 괴문서를 작성하고 배포한 성명불상자를 상대로 법적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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