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 뉴스에서 가장 많이 접한 단어는 아무래도 ‘공천’이 아닐까 싶다. 윤석열 대통령의 “875원 대파” 발언 이전까지 양대 정당의 뉴스들은 온통 당내 주류와 비주류, 혹은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 간의 공천 갈등으로 뒤덮였다. 선거를 불과 일주일여 앞둔 시기까지도 공천된 주요 인사들의 비위에 관한 보도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결국 공천이 선거 보도의 시작과 끝인 셈이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카인즈에서 검색어 ‘공천’이 들어간 기사가 2024년 3만2209건(4월1일 현재)에 달하고, ‘공약’ 2만1258건보다도 1만건 이상 많다.
공천에 대한 보도가 많은 이유는 선거의 판세와 인물을 주로 주목하는 언론의 관행 때문이다. 공천으로 판세가 바뀌고, 갈등이 전면화되며 여러 인물이 화제를 모은다. 그런데 이번 공천 보도에서 언론이 잘 파고들지 않은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공천 시스템’이다. 이른바 ‘공천 파동’ 때마다 양대 정당은 ‘시스템 공천’을 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사천(私薦)도, 특정 계파에 유리한 공천도 아니다”는 입장이 나왔다. 과연 그럴까. 언론은 왜 이를 제대로, 심도 있게 검증하지 않는 걸까.
공천 시스템의 핵심은 ‘평가’다. 실제로 양대 정당은 국회의원 혹은 후보자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오랫동안 정비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2015년 ‘김상곤 혁신위’가 도입한 ‘선출직공직자 평가제도’를 통해 국회의원을 평가했고, 국민의힘은 주로 ‘당무감사’를 통해 해왔다. 선거를 앞두고 조직되는 ‘공천관리위원회’는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 평가한다. 여러 논란이 일었던 공천 파동이 모두 이런 시스템화된 평가 제도의 결과라는 것이 양대 정당의 입장이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국회의원 또는 후보자를 평가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정치인을 어찌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우리 언론은 관심이 너무 없다. 선거 때 나부끼는 온갖 현수막에도 ‘진짜 일꾼’, ‘일 잘하는 후보’라는 문구가 넘쳐나지만, 정작 국회의원의 주된 직무가 무엇인지, 각 분야에서 성과를 낸 국회의원이 누구인지조차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언론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유권자들이 알 리는 만무하다. 만일 공천 파동 때 유권자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성과를 낸 정치인이 누구인지 알았으면 어땠을까. 소수자 인권에선 누가 성과를 냈어, 자본시장 개혁엔 누가 제대로 일했지, 저출생 문제를 잘 다룬 국회의원은 누구였어, 의료와 돌봄 문제에 정통한 인사는 그 정치인이었지라는 평가가 공유되고, 그 평가를 두고 논쟁한 적이 있었다면 이런 수준의 공천 파동으로 선거를 치르진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발전하지 않았다 보니, 그동안의 평가는 대부분 요식적이었고 유권자의 판단에 의미 있는 근거가 되지 못했다. 여야 정당 역시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다면 평가(동료 국회의원이나 국회 보좌진들의 평가)나 여론조사 등으로 대체했다. 이런 평가를 실질화하려면 국회 의정활동을 통해 어떤 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질적·양적 평가가 병행돼야 한다. 3월19일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와 민간 연구소 랩2050이 21대 국회를 통과한 2877개의 법안을 전수조사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제·산업 분야의 입법이 활발했고, 고용·노동, 복지·돌봄 분야의 입법이 미진했다. 이런 양적인 평가에 질적인 분석이 더해져야 제대로 된 평가가 가능하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선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며 “민주주의에서 정보를 잘 제공 받은 유권자(well-informed electorate)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여전히 유권자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뽑아야 할지도 모르는 선거를 치르고 있다. 제22대 국회를 향한 언론의 관심은 다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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