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여전히 너무나 위태롭구나.’
약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 국면을 지켜보며 또 한번 이를 느꼈다. ‘누가 더 최악인지’ 겨루는 승부가 ‘박빙’인 이 기막힌 경기에서 혹시나 했던 우려는 역시나로 바뀌었다. 스스로 만든 악재와 패착 속에 위기에 몰린 양당은 결국 가장 먼저 ‘여성’을 내던진다. 제 살기에도 급급하니 여성을 챙겨줄 여유 같은 건 없다는 식이다. 한국 정치가 여전히 기득권 중년 남성의 패거리 정치에 머물러 있다는 방증이다. 각 정당의 옷 색깔은 다르지만 이런 본질은 같다.
피 튀기는 공천 전쟁의 결과는 냉정했다. 지난 22일 마감한 총선 후보등록 결과 남성 600명, 여성은 99명(14.2%)이었다. 공직선거법 권고사항(여성 추천 30%)의 반 토막 수준, 4년 전 지난 총선(19.1%) 때보다도 약 5%p 하락했다. 여성 30% 목표를 당헌에 의무조항으로 명문화한 양당의 약속은 말뿐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를 약속이나 한듯 뻔뻔하게 들이민 수치는 국민의힘 11.8%, 더불어민주당 16.7%다.
숫자에서 받은 1차 충격은 밀려난 이들의 면면에서 더 큰 2차 충격을 안긴다. 다른 어떤 가치보다 성평등에서 후진하는 정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서다. 지난 대선 때 추적단 불꽃 출신 박지현을 막판 영입하며 여성 표 결집 효과를 봤던 민주당의 안면몰수는 놀라울 정도다. 강성 지지층이 주도했다고 일컬어지는 이번 민주당 공천은 “페미(니스트) 선수는 쉬어도 된다”, “박지현·정춘숙·박성민·권인숙, 페미대장들 소장들 굿바이” 같은 일각의 발언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전개로 한 줄 요약된다.
대법원에서 권력형 성폭력 유죄 판결을 받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측근이 공천되고, 피해자의 편에 섰던 신용우 세종을 무소속 후보는 공천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군 내 성폭력 문제 등에 적극 대응해 온 군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에 대해 양심적 병역 거부를 ‘병역 기피’로 왜곡하며 부적격 통보하고, 조수진 변호사는 여성혐오적 변호 전력으로 논란을 더했다.
국민의힘이라고 나을까. 10명 중 1명 선심 쓰듯 나눠주는 여성 몫에 성평등 관점이 있을리 만무하다. 민주당의 분발(?)로 차이가 줄어들긴 했지만 이곳이야말로 여성을 동등한 존재나 경쟁자로 보지 않는 전통적 의미의 여성혐오가 굳건하다. 여야 모두 여성을 모욕하는 정치를 한다는 점에선 대동소이한 것이다.
10명 중 2명을 넘어본 적도 없는 한국의 여성 의원 비율에 대해 생각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8개국 중 36위(19%)로 꼴찌 수준. 정말 한국 여성의 정치적 역량이 가장 떨어져서 나타난 결과일까. 뿌리 깊은 구조적 성차별의 작동을 읽어내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수치다.
세계 여성 정치계의 화두인 ‘남녀동수 민주주의’가 유력 정치인은 물론 정치권 전반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반면 프랑스는 무려 1999년에 이를 법제화했다. 후보 성비를 50대 50으로 추천하도록 하는 헌법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권고가 아닌 강제, ‘동등한 주권자’로서 남성과 같은 수의 여성 대표성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당시 세계를 놀라게 한 법이었다. 여성 추천 확대를 적극적 우대조치로만 보고 수혜니 불공정이니 하는 한국 사회는 아직 얼마나 갈 길이 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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