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자살한 어머니. 신문기자 출신 소설가 정진영 작가는 담담히 말했다. 어머니를 되살린 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집필하며 그는 온몸이 아프도록 울었다. 13년 만의 ‘애도’였다.”

한국일보가 15일 ‘치유의 저널리즘’을 내세운 버티컬 콘텐츠 ‘애도’를 내놓았다. 자살로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자살 사별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치유 레시피’, ‘베테랑의 한끗’도 함께 기획해 ‘힐러 콘텐츠’로 이름을 붙였다. 이르면 올해 안에 유료화할 계획이다.

15일 나온 한국일보 '애도' 1화. 27분 길이 오디오 클립이 있다. '자살 사별자'인 정진영 작가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2021년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써냈다.

‘애도’는 2018년 시작한 롱폼 인터뷰 ‘삶도’로 이름을 알린 김지은 기자가 기획했다. PD, 디자이너, 개발자 등 제작팀에 9명이 붙었다. 두세 시간 정도 걸린 인터뷰를 짧게 정리한 음성을 긴 기사와 함께 별도의 페이지에서 제공한다.

팀은 ‘치유’에서 저널리즘의 역할을 찾았다. 언론이 듣기보다 말하는 데 치중하면서 누군가를 부당하게 비난하고 상처 주는 일은 그만하고, 사회적 아픔이나 병리현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CNN을 대표하는 앵커 앤더슨 쿠퍼가 만드는 팟캐스트 ‘앤더슨 쿠퍼와 함께하는 모두’도 기획에 참고가 됐다. 슬픔에 관한 인터뷰 프로그램으로 2022년부터 연재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출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첫 아내와 딸은 1972년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치유 저널리즘에 걸맞은 다른 아이템도 개발됐다. 마음을 진단하고 돌보는 방법을 소개하는 ‘치유 레시피’는 22일 첫선을 보였다. 반려동물을 잃고 우울감을 겪는 ‘펫로스 증후군’을 다뤘다. ‘베테랑의 한끗’은 29일 시작한다. 실패를 거듭하고 고뇌 많은 직업인의 성장 과정을 짚어 전한다. 이들 세 개 콘텐츠가 3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연재된다.

한국일보 버티컬콘텐츠팀. 가운데 김지은 팀장(애도), 왼쪽 손성원 기자(치유 레시피), 오른쪽 박지윤 기자(베테랑의 한끗). /사진=한국일보

한국일보는 힐러 콘텐츠를 올해 안에 유료화해 수익 사업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한국일보에는 이혜미 기자의 ‘허스펙티브’, 고은경 기자의 ‘애니로그’ 등 이름을 알린 여러 콘텐츠가 있지만 이 가운데 힐러 콘텐츠를 유료화 출발점으로 삼은 셈이다.

힐러 콘텐츠 세 개를 묶어 별도의 페이지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본격적인 판매를 위해 전문 마케팅 직원도 붙일 계획이다. 유료화에 앞서 로그인월부터 적용해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수익은 뉴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포털에서 받는 전재료와 맞먹는 정도가 목표다. 디지털 수익을 포털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독자가 한국일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믿을 만한 언론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도 부수적인 목표다. 온라인에서 독자를 유입해 ‘본진’인 한국일보의 영향력을 높이는 구상이다. 디지털 전환이라고 해서 본말이 전도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자 호응도 높았다. ‘애도’가 나간 뒤 한국일보 홈페이지 안에서 며칠 동안 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한 독자는 “이 기자와 기획을 받아준 부서와 신문사가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진다”는 의견을 보내기도 했다.

김주성 뉴스룸 이노베이션부문장은 “신문사가 말랑한 ‘치유’를 다룬다는 건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며 “균형 잡히고 신뢰감이 높은 것이 한국일보의 장점인데, 이런 자산을 바탕으로 디지털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