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통보문 과태료만 연 3억"… 지역방송, 지원 없고 책임만 많아

한국방송학회 14일 '지역방송 리디자인'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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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의 물결과 동영상 OTT 플랫폼의 성장으로 지역 방송사들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매출은 정체되고 주요 수익원인 광고 재원은 급격하게 악화하면서 제작 여력이 현저히 줄어들고 양질의 지역 정보도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4일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열린 ‘지역방송 리디자인’ 토론회에선 이 같은 실태가 공유되며 지역 방송사들이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제도 및 정책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잇따랐다.

한국방송학회는 지난 14일 춘천 강원대에서 '지역방송 리디자인'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온라인 줌 회의로도 진행됐다. /한국방송학회 제공

이날 발제를 맡은 한선 호남대 미디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방송환경의 변화가 지역 방송의 주요 수익원인 광고 재원을 급격하게 축소시켜 산업적, 저널리즘적 위기를 키우고 있다”며 “여기에 더해 본사와의 수직적 관계에서 지역 방송사가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선 교수는 “KBS의 경우 수신료 분리징수 이후 지역에 분배되던 예산이 감소할 뻔했고, MBC의 경우 본사가 재원의 일부를 감당하기 힘들어지면서 지역 MBC들이 더욱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며 “자체 예산이 부족해지면서 지역 방송사들이 정부지원 사업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협찬에 의존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특히 한국전파진흥협회(라파·RAPA) 공모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면 프로그램을 접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현재 지역 방송사들의 제작 여력은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말했다.

라파에서 매년 진행하는 ‘프로그램제작지원’ 사업은 2014년 20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39억원으로 2배가량 늘었다. 한선 교수는 그러나 “지역 KBS, MBC를 비롯해 민영방송과 중소방송까지 지원 사업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방송사당 많아야 1억원도 안 되는 돈을 지원받게 된다”며 “그러다보니 지금 방송 환경이 엄청나게 변화했는데도 지역 방송사들은 디지털 플랫폼에 대응할 만한 역량이나 여력, 인프라를 갖출 수 없는 상황이다. 전국의 지역 방송 34개사 중 13개 방송만이 뉴미디어 관련 조직을 유지하고 있고, 그마저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한국방송학회는 지난 14일 춘천 강원대에서 '지역방송 리디자인'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온라인 줌 회의로도 진행됐다. /한국방송학회 제공

토론회에선 수십 년간 묵은 낡은 규제 역시 지역 방송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단 지적도 나왔다. 노승찬 춘천MBC 편성제작국장은 “지상파는 남녀노소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제재와 처벌이 따른다”며 “예를 들어 정부에서 보내주는 재난 통보문을 화면 하단에 흘림자막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한 건이라도 놓치면 과태료가 1500만원이다. 하루에 10건에서 많게는 수십 건이 오는데, 지난해 16개 지역MBC만 봤을 때 50% 이상 감면을 받았는데도 과태료만 3억원 정도를 냈다”고 말했다.

노승찬 국장은 또 “100% 자막 방송을 해야 하는데 연간 6000만원 비용이 소요되고 국가는 절반밖에 지원해주지 않는다”며 “자막 방송 업무를 담당하는 업체가 크게 두 곳으로 과점 상태인데 계속 가격을 올려 그것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광고 규제도 상당해서 오후 5~7시 사이엔 햄버거나 피자 같은 고열량, 저영양 식품은 광고를 못하고 맥주 같은 주류도 밤 10시 이후에나 광고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갈수록 이런 책임과 의무가 확대되고 있다”며 “하지만 광고 재원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경제 논리로만 이야기하면 지역 방송사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지역 방송 담당하는 공무원은 딱 1명"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지역 방송사의 생존과 재정적 안정성 확보를 위해 법·제도 및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승현 동서울대 디지털방송콘텐츠학과 교수는 “지역 방송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려면 먼저 입법이 이뤄져야 하고 그에 따른 정부 조직이 마련돼 현실적인 재원과 인력 투입이 돼야 한다”며 “2015년 많은 노력 끝에 ‘지역방송발전지원 특별법’의 효력이 개시됐지만 지난 10년간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법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과 인원이 배정돼야 하는데, 방송통신위원회 지역미디어정책과에서 지역 방송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준 법안은 마련됐으니 예산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담당자 배정을 좀 더 늘릴 필요가 있다”며 “아니면 독립적인 조직을 구성해 지역 방송에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방송이 지역성을 구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지난 13일 정부가 발표한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김영수 KNN 정책국장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정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내용밖에 없더라”며 “이미 사문화된 규정들을 완화하면서 엄청나게 큰 혜택을 준 것처럼 얘기하는데 좀 안타까웠다. 과연 이런 내용으로 지역 방송에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영수 국장은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사람 중 절반은 울산으로 출근하고, 광주에서도 전남 목포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듯 앞으론 지역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사라지고, 큰 개념의 지역성이 필요해지고 있다”며 “갈수록 지역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합리적인 고민과 대안이 마련됐으면 한다. 방통위가 전향적인 태도로 지역 방송에 대한 허들을 조금이라도 풀어준다면, 또 수도권 중심의 네트워크가 조금은 완화된다면 지역 방송이 좀 더 지속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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