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잘 들으라”며 이른바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자진사퇴를 거부하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황상무 수석은 해당 발언 이틀 만인 지난 16일 별도의 거취 표명 없이 “언론인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네 줄짜리 입장문을 대통령실 출입기자 단체채팅방에 올렸다. 여당은 물론 보수 성향 신문조차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라며 자진사퇴를 요구했지만 사실상 사퇴를 거부했다. 해임 요구를 받고 있는 대통령실도 별도의 입장문을 내며 오히려 황 수석을 비호하는 모양새다.
발언 이틀 만 ‘네 줄’ 카톡 사과… 대통령실, 황 수석 비호 입장문
앞서 황 수석은 지난 14일 MBC를 포함한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예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이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등에 대한 의견을 말하다 군대 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황 수석은 “MBC는 잘 들어”라고 말한 뒤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말했다.
황 수석이 언급한 사건은 1988년 8월6일 오홍근 중앙경제신문(중앙일보 자매지로 이후 중앙일보에 흡수 통합) 사회부장이 출근길에 서울시 강남구 삼익아파트 대로변에서 괴청년 3명에게 흉기로 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황 수석은 ‘왜 MBC에게 잘 들으라고 했냐’는 질문엔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했고, ‘정보보고하지 말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해당 발언이 알려지자 언론계는 발칵 뒤집혔다. MBC 기자협회는 당장 다음날 성명을 내고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언론인 테러를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언론관이 경악스럽다”며 “더 말이 필요 없다. ‘황상무 수석은 잘 들어라.’ 즉각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전국MBC기자회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비판적인 기사를 계속 쓰면 허벅지에 회칼이라도 꽂겠다는 말인가. 등골이 서늘하다”며 “즉각 사과하고 물러나라. 그것이 한때 언론인으로서 마지막 양심을 지키는 길”이라고 밝혔다.
MBC 역시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방송 기자, 더욱이 유명 뉴스 앵커 출신 고위 공직자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고는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언론 겁박 행위”라며 “때로는 노골적으로, 한편으로는 교묘하게 진행돼온 MBC 흔들기가 기어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태가 커지자 황 수석은 이틀 만인 지난 16일 네 줄짜리 사과문을 냈다.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공직자로서 언행을 각별히 조심하고 더 책임 있게 처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실 역시 18일 입장문을 내고 “우리 정부는 과거 정권들과 같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언론인을 사찰한 적도 없고 그럴 의사나 시스템도 없다”며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철학”이라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 등 6개 언론현업단체 “대통령실 안일함이 더 심각”
그러나 정작 별도의 거취 표명은 없자 언론계는 또 다시 반발했다. 한국기자협회 등 6개 언론현업단체들은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는 필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즉시 황 수석을 해임하라”고 촉구했다. 현업단체들은 “황 수석은 그날의 협박이 그저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일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한 말실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라며 “더욱 심각한 것은 대통령실의 안일함이다. 입에 발린 몇 마디 사과로 황 수석의 자리를 보전해주겠다면 우리는 황 수석의 테러 협박에 윤 대통령이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도 서울 마포구 MBC 사옥 내·외부에서 플래시몹을 진행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잘 들어라 황상무를 해임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대통령실이 입장문에서 ‘언론의 자유’를 언급한 데 대해 “심각한 기억 상실이자 자기 부정이고, 유체 이탈식 발언”이라며 “정권 출범 직후부터 MBC를 장악하고자 국가 기관을 총동원했으며 현재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회 등을 앞세워 MBC를 탄압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를 군사 독재 시절 이상으로 철저히 짓밟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언론의 자유’를 입에 올리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황 수석이 거취를 결단해야 한다는 요구는 여당과 보수 성향 신문들에서도 잇따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나경원·안철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 등은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오늘이라도 당장 사퇴하는 게 올바른 길”이라며 거취 결단을 압박했다. 조선일보도 19일자 사설을 통해 “황 수석은 윤 정부의 국정 철학과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한 것이고, 이는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라며 “윤 대통령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하지만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무슨 일이든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정 책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국민 여론을 악화시켜 국정 수행에 장애가 될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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