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안에 대기업의 방송 소유 지분 규제를 완화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 현재 지상파방송사를 소유한 대기업집단인 태영그룹(SBS)과 SM그룹(울산방송)이 당장 수혜를 입게 되는 것은 물론, 다른 대기업의 방송사 인수나 진출도 수월해질 전망이다.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융발위)는 13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전체회의를 개최하고, ‘미디어·콘텐츠 산업융합 발전방안’(발전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융발위는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난해 4월 출범한 범부처 차원의 기구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방송통신위원장, 국무조정실장 등 정부위원과 성낙인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학계·산업계 등 민간위원 15명이 참여했다.
재허가·재승인제, 소유제한 등 방송규제 13개 개선
발전방안(안)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미디어·콘텐츠 강국 구현’을 비전으로, △K-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미디어·콘텐츠 산업 선순환 발전을 위한 규제 혁신 △글로벌 진출 및 신시장 선점 총력 지원 △지속 가능한 상생 생태계 조성 등을 4대 전략으로 제시했다.
방송 분야 핵심은 규제 완화다. 융발위는 “혁신을 저해하는 낡은 방송규제를 전면적으로 검토해 총 13개의 규제개선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유료방송(홈쇼핑, 케이블, 위성, IPTV)의 재허가·재승인제를 폐지하고, 지상파방송 및 종편·보도 채널의 허가·승인 최대 유효기간을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확대한다.
방송 소유를 제한하는 대기업 기준도 상향 조정한다. 현행 방송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자산총액 10조원이 넘는 대기업은 지상파방송 지분 10%,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지분 30%까지만 소유할 수 있다. 이를 초과한 지분에 대해선 방통위가 처분 등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의결권을 제한할 수 있다. SBS를 소유한 태영그룹과 울산방송을 소유한 SM그룹이 해당 규제를 받고 있다.
정부는 경제 규모를 반영해 이 대기업 기준을 자산총액 10조원에서 GDP 일정 비율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완화할 방침이다. 이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해서 방통위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실행할 수 있다. GDP 비율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앞서 지난 2021년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발의했던 방송법 개정안(GDP의 1000분의 15 이하)을 2023년 실질 GDP(1995조원)에 적용한다면 약 30조원까지 확대된다. 태영과 SM그룹이 소유 규제를 피하게 되는 것은 물론, 자산 10조원이 넘는 상당수 대기업의 방송 진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부는 또 유료방송과 일반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시장점유율 규제도 폐지하고, 종합편성방송사업자의 오락프로그램 편성규제(60% 이하)도 없앤다. 프로그램별 편성시간의 20% 이내로 제한된 광고시간 제한도 풀어주고, 특정 품목에 대한 광고 금지·제한 규제도 완화할 예정이다. 중소·지역방송에 대해선 겸영규제 완화, 협찬사 이름을 프로그램 제목에 넣을 수 있는 방송광고 규제 특례 도입도 추진한다.
“대기업 민원창구 전락” 언론노조 혹평
한덕수 총리는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이번 정책은 산업계, 학계 등 민간전문가와 관계부처가 함께 만든 종합전략으로, 현장의 오랜 요구에도 불구하고, 개별 부처가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미디어‧콘텐츠의 핵심 정책방안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며, 발전방안이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기업 민원 해소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새로운 방안은 하나도 찾을 수 없다”며 “그저 지난 정부 때부터 미뤄둔 미디어 사업자의 규제 완화 요구만을 정리한 민원 처리 절차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가장 어처구니없는 정책안은 지상파 민영방송의 소유·겸영 완화와 지분 소유가 제한되는 대기업 기준의 완화”라고 꼬집으며 “이미 자산 규모 10조원을 넘은 SBS 최대주주 태영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SBS까지 채권단에게 담보로 내놓는 상황을 보고도 이런 안을 내놓을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더 큰 문제는 발전방안이 내놓은 정책보다 침묵한 정책과제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약속했던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공적 책무 중심의 협약 제도 도입’은 사라졌고, 위기에 처한 지상파 방송광고의 결합판매 제도 개선에 대한 대비책도 전혀 없다”면서 “이런 식의 땜질 처방” 대신 22대 국회에서 미디어 규제 진흥 체제 전반을 개혁할 미디어개혁특별위원회의 설치를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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