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여러 관련 보도가 있었다. 각종 행사와 성차별 철폐를 위한 여성 단체의 집회·시위에 대한 스트레이트 기사가 가장 많았고, 한국의 저출생 문제에 대한 진단과 제언, 그리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진입한 이후 한 번도 꼴찌를 벗어난 적이 없는 유리천장 지수 등이 주요 보도 아이템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 권력 관계에 따른 여러 문제가 상존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념일 혹은 특정 사회적 사건을 중심으로 관련 의제를 환기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일 것이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성평등 관련 의제가 우리 언론에 주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부 정책에서 성평등 관련 논의가 거의 없다는 점이 일차적인 원인이기는 하지만, 22대 총선 지역구 공천 확정자 중 여성 비율이 각 당의 당헌·당규에 제시한 바에 한참 못 미치는 문제, 총선에서의 여성 의제 실종 문제, 돌봄 정책과 성평등 정책의 분리 등 당면한 정치 상황에 대한 젠더 관점의 분석 역시 소수 언론사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성평등 관련 의제를 ‘여성’이라는 영역으로 한정하려고 하는 인식이 성평등 관련 보도를 발굴하고 확산하는 데 어려움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젠더는 성별의 영역이 아니라 관점에 대한 것이라서, ‘여성’ 영역을 보도할 때조차도 종종 해당 보도의 전제나 방향에 성평등 관점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저출생 관련 보도를 볼 때 드는 의문은 여성이 출산을 ‘포기’한다는 표현이었다. 이번 3.8 여성의 날 관련 보도에서도 BBC 진 매킨지 기자의 연설을 보도하는 기사, 그리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여러 기사에서 ‘출산 포기’를 제목으로 선택하는 언론사가 많았다.
진 매킨지 기자는 2월28일 BBC 송출 기사에서 한국 여성들이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한다(decided not to have children)’라고 썼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자주 우리나라 여성들이 ‘출산을 포기한다’라고 설명한다. 사실 관련 통계 조사에서 늘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였는가?”라고 질문하기 때문에 언론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이 표현을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기한다는 것은 여러 상황 때문에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더 적합한 말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는 ‘이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전제가 깔린 말이다.
실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보도를 잘 들여다보면, 여성들은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을 당연한 생애 과업으로 전제하기에 이를 수행하지 않는 것을 포기라고 의미화하려고 하지만, 청년 내부의 다양성이 늘어남에 따라 이를 생애 과업으로 여기지 않는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청년 여성의 경우 한국 사회의 높은 성별 임금 격차와 경력 단절 현실, 즉 성차별적 현실을 경험하고 있고 과거의 생애 과업 모델이 갖는 억압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출산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절감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출산을 포기하지 않게 장려금을 준다는 정책을 제시하면서 이를 ‘여성 정책’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 문제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기존의 담론이나 권력 구조 하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경청할 수 있도록 공적 담론의 장을 여는 역할을 언론이 수행해야 한다. OECD 유리천장 지수가 다루는 것은 일상 속의 성차별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역량을 훼손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12년째 꼴찌라고 하는 수치만큼이나 이번 총선에도 여전히 지역구 여성 공천이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등, 이와 같은 수치를 만들어내는 현실에 대한 의제화가 언론을 통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정부와 같이, 성평등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경우라면 언론의 사회적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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