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입을 틀어 막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 제기로 해촉된 김유진 위원의 해촉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불씨가 된 ‘청부 민원’ 의혹은 지난해 12월 방심위 내부고발자가 권익위원회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친인척, 지인 등이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보도에 대해 다수의 심의 민원을 넣었고, 방심위 사무처가 이를 보고했는데도 류 위원장이 안건 심의에 참여해 이해충돌방지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법원 판시를 보면 방심위가 얼마나 파행 운영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법원은 “청부 민원 의혹이 사실일 경우, 류희림 위원장이 심의에 참여한 것이 방심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덧붙여 “방심위 위원이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오히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다”고 해촉의 부당함을 꼬집었다. 방송의 공정성 심의를 목적으로 설립된 방심위가 되레 비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사태를 질타하고 있다.
방심위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데는 윤 대통령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윤 대통령은 국회가 추천한 방심위원은 아무런 설명 없이 임명하지 않고, 야권 방심위원이 해촉되자 대통령 추천 위원 2명을 위촉해 6대1(대통령·여권 6명, 야권 1명)의 기형적 구조를 거들었다. 김유진 위원이 복귀해 현재 대통령 추천 위원이 4명이나 되는 위법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선택적 해촉과 위촉이 가져온 방심위와 대통령의 합작품이다.
방심위의 기울어진 잣대는 신속심의 안건 7건 중 6건이 정부여당 비판에 쏠려있는 데서 알 수 있다. 대통령을 비판하면 ‘입틀막’하는 행태가 방심위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있는 현실이 극히 우려스럽다. 전근대로 퇴행하는 징표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상황이 엄중한데도 방심위의 폭주는 그치지 않을 모양이다. 방심위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김건희 특검법’을 다루며 ‘김건희 여사’라고 부르지 않았다며 SBS에 행정지도를 내린 건 블랙코미디의 압축판이다. 본회의에 부의된 법안 명칭 어디에도 ‘김건희 여사’라는 표현이 없는데, 무슨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김건희 여사 특별법’으로 부르지 않는 언론은 언제든 심의에 회부될 수 있다는 경고인가.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잡아가던 유신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청부 민원’ 의혹 신고를 접수한 뒤 두 달 가까이 뭉개고 있던 국민권익위원회가 뒤늦게 조사에 착수, 어떤 결과를 낼지도 주목된다. 권익위는 공익제보자임에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류희림 위원장이 제보자를 색출하고, 경찰이 방심위를 압수수색할 때까지 침묵한 권익위가 앞으로 어떤 태도로 ‘청부 민원’ 의혹을 다룰 것인지 지켜보는 국민들이 많다.
방심위에 복귀한 김유진 위원은 언론인터뷰에서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표적·정치·과잉 심의가 왜 문제인지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현할 자유가 억압되는 사회를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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