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 2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가 된 가운데 일부 매체의 집중 보도와 방식 등을 두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논란의 정치인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조명하며 검증 시도는 미진하고, 정파성의 연장선에서 홍보에 치중했다는 평가다. 몇몇 언론사에선 영화 단체관람을 진행하며 내외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영화 건국전쟁 관련 첫 보도가 나온 1월12일부터 방송은 2월22일까지, 신문(지면)은 2월23일까지 총 15개 매체의 보도를 살펴본 결과 조선일보 38건, 중앙일보 15건, KBS 9.5건, TV조선 6건, 채널A 3.5건, 매일경제 3건, 경향신문·한국일보·한국경제·MBN 각 2건, JTBC 1.5건, 한겨레 1건, MBC 0.5건, SBS·동아일보 0건의 수가 확인됐다.
가장 많았던 조선일보 보도 수는 전체 평균 5.7건의 약 7배에 달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이승만 다큐 ‘건국전쟁’ 좌석판매율 32%로 1위 ‘이례적 돌풍’>(2월6일) 기사를 통해 영화 흥행세를 조사대상 매체 중 처음 알렸는데 대부분 언론보도가 흥행 이후 나온 반면 조선일보는 이전 기사 수가 9건에 달했다. 조사 기간 이후인 지난달 28일자 지면에서도 매체는 10면 전체를 할애하는 등 집중조명을 이어왔다.
민언련은 보고서에서 “지면 절반 가까이 많게는 2개 지면을 할애”해온 기조를 지적하며 “홍보성 기사”라고 평가, “영화가 이 전 대통령의 공적만 부각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고 영화와 감독 일방의 주장으로만 채워져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가치 판단과 보도 수 등은 언론사별로 다를 수 있지만 ‘논란의 정치인’을 다루고 편향·왜곡 지적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해 언론이 ‘감독 일방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고 역사적 사실확인, 검증엔 소극적이란 요지는 돌아볼 부분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달 22일 KBS ‘뉴스9’ <영화 ‘건국전쟁’ 80만 돌파...이승만 공과 재평가 점화> 리포트가 꼽힌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다음날 성명에서 “문제는 이 영화를 다루는 KBS 뉴스의 방식”이라며 “영화 개봉부터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내용을 담은 것과 관련해 역사왜곡 논란이 수없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해당 리포트에서는 영화 내용에 대해 검증하거나 사실 여부 확인을 하려는 노력은 거의 들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다양한 관객 평가 가운데 영화내용을 옹호하는 10대 인터뷰만 담았다는 비판, 리포트 내 감독을 인터뷰한 인터뷰어가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이란 추정 등을 담은 성명은 “수뇌부 전체가 해당 영화 띄우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공영방송 KBS를 개인이나 집단의 이념이나 소신을 실현하는 곳으로 만들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앞서 민언련은 ‘한강다리 폭파 때 민간인 희생자는 없었다’는 영화 주장에 대해 문헌 등을 통해 반박, 여러 언론이 감독 입장만 충실히 전하고 비판, 추가질문을 하지 않았다며 조선일보, 중앙일보, 채널A, MBN 등을 보고서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매체 논조, 수뇌부의 성향이 정파성 맥락에서 특정 영화를 취사선택, 보도하는 행태로 나타난 결과로 해석된다. 언론이 ‘역사전쟁’의 장이 되고, 다시금 ‘진영전쟁’을 대리하는 플레이어가 됐다는 점에서 언론 전반의 신뢰엔 악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일부 언론 사측은 기자 등을 포함해 영화 ‘단관’을 추진하며 비판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조선일보 편집국엔 지난달 22일 “사장님이 다음주에 영화 ‘건국전쟁’을 관람하시는데 편집국에서 시간되는 분들 같이 보자고 하신다”는 공지가 나왔고 28일 실제 진행이 됐다. 당시 방상훈 사장을 비롯해 편집국 간부와 고문, 일부 기자가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파이낸셜뉴스에서도 지난달 22일 단체관람이 시행됐다. 사측의 제안에 노조 등에선 조조영화 관람에 따른 업무차질, 강제관람 소지, 정치적 논란이 큰 영화 단체관람의 적절성 등 문제제기가 나왔고, 티켓 제공이 복지면에선 낫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파이낸셜뉴스 한 기자는 “참석에 부담을 느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취재기자들로선 바쁜 오전 시간대에 참석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데스크들 위주로 참석한 것으로 안다”며 “예전 안중근 의사를 다룬 ‘영웅’을 함께 봤는데 그거랑은 다르지 않나. 정치적으로 쟁점 있는 영화를 단체관람하는 게 언론사로선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 수 있는 경솔한 처신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