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을 스스로 비난하는 것처럼 짜깁기된 영상이 틱톡에 올라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게시물 삭제나 접속차단을 뜻하는 ‘시정조치’를 의결했다. 경찰은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작성자 색출을 위한 강제수사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강력대응 방침을 내세웠고, 시민단체들은 무리한 심의와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방심위는 지난 23일 긴급 통신심의소위원회를 열어 틱톡에 올라온 대통령 연설 짜깁기 영상 22건에 대해 참석위원 4명의 만장일치로 시정요구를 의결했다. 시정요구를 받은 사업자는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접속차단을 해야 한다. 틱톡은 해외사업자라서 이를 따를 의무는 없다. 27일 현재도 영상은 남아 있다.
문제가 된 게시물은 ‘가상으로 꾸며본 윤석열 대통령의 양심고백<사진>’이라는 제목의 45초짜리 영상으로 지난해 11월 올라왔다. AI로 만든 딥페이크 게시물이라고 보도가 나왔지만 단순한 편집기술로 짜깁기된 영상이다.
지난 2022년 2월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는 방송연설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무능하고 부패한”, “특권과 반칙,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다”, “상식에서 벗어난 이념에 매달려” 같은 표현으로 비난했다. 작성자는 이들 문장의 주어를 ‘저 윤석열’이나 ‘윤석열 정부’로 바꿔 편집했다.
방심위에서 적용한 심의 근거는 ‘사회적 혼란 야기’로, 자의적인 기준 때문에 이미 여러 차례 정치적 논란이 됐다. 지난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도 이를 근거로 심의됐다. 이날 회의에서 이정옥 위원은 “뉴스타파의 ‘악마의 편집’이 뭐냐면 ‘하지 않은 일을 붙인 것’”이라며 “이건(틱톡 영상) 완전한 허위다. 사실관계를 완전히 반대로 했다”고 말했다.
회의는 전날 경찰이 요청해 긴급히 소집됐다. 서울경찰청은 이달 초 국민의힘으로부터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혐의로 고발을 접수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26일 정례 기자간담회를 열고 “아이디를 통해 개인을 특정하는 압수수색을 할 것”이라며 “당사자가 어떤 의도였는지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버공간을 뒤지고 있는 경찰은 작성자의 거주지까지 강제수사에 나서지는 않았다.
대통령실은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방심위에서 시정조치가 의결되자 김수경 대변인은 “해당 영상은 명백히 허위조작영상”이라며 “일부 매체에서 사실과 다른 허위조작 영상을 풍자영상으로 규정하거나 가상표시가 있어 괜찮다는 등으로 보도하고 있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방송통신위원회는 네이버와 카카오, 구글 등 국내외 플랫폼 사업자들과 회의를 열고 딥페이크 자율규제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방심위 의결에 맞춰 대통령실과 정부가 발빠르게 나선 모양새다. 방통위는 딥페이크 대책 회의는 방심위와 별개로, 날짜가 공교롭게 겹쳤다는 입장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7개 시민사회단체는 27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조치에 반발했다. 사단법인 오픈넷 소속 손지원 변호사는 영상에 대해 “의견이나 평가를 담고 있을 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어떠한 사실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사회를 위협하는 것은 대통령 풍자 영상이나 비판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시민이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근거 없는 접속 차단과 시민을 탄압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공권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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