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정의’가 정의가 아니듯, ‘선택적 데이터’ 또한 사실이 아니며 진실일 리 없다. ‘골라 먹는 재미’란 아이스크림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역사적 사실을 골라 쓰다간 골로 갈 수 있다. “아~, 맞아, 그래, 그렇지”를 영화 상영 내 연발하던 관객은 ‘이 영화를 건국 1세대에게 바칩니다’란 장면에선 기립 박수를 쳤다. 그가 영화관을 나서며 내뱉은 “아이들이 꼭 봐야 해"란 말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독재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에선 의회의 자유가 만개했다’, ‘이승만이 농지개혁을 주도했다’, ‘3·15 부정선거는 이승만과 상관없다’, ‘한국전쟁 발발 후 이승만의 긴급 피난은 상식적인 일이다’, ‘이승만은 서울시민에게 안심하라고 방송하지 않았다’. 영화 ‘건국전쟁’에 담긴 감독의 메시지다. 이 영화는 2024년 2월25일 기준 누적 관객 수 96만 명을 넘었다. 영화를 직접 본 실관객 807명은 한 포털 사이트에서 평점 9.7점을 주었다. 관람평은 칭찬 일색이다.
감독은 ‘특종! 70년 만에 공개되는 이승만 대통령의 희귀 영상’이라며 본인의 유튜브에 영상 발굴 과정을 올렸다. 영화 홍보를 위한 예고 영상이다. 2023년 6월 이승만의 숨겨진 기록필름을 찾아 나선 지 2년이 되는 어느 날, 미국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거리 한복판에 새겨진 이승만의 이름과 1954년 8월2일 방문 기록을 확인하고 미국 국립문서 기록관리청(NARA)를 찾아가 이승만의 뉴욕 ‘영웅의 거리’ 퍼레이드 영상을 발굴했다는 내용이다. 4·19 이후 이승만에 대한 기록필름은 한국 내에 제대로 보관조차 되지 않았다며 영화에서 원본 기록 영상을 확인하라고 했다. 몇몇 언론들은 감독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이 영상이 ‘70년 만에 첫 공개’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거짓말이다. ‘가짜뉴스’다. 도입부에 새겨진 영상의 제목 ‘Rhee Salute - New York Hails South Korea’s President’ 또는 ‘이승만 뉴욕 카퍼레이드’로 검색하면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상이다. 파라마운트가 제작해 배포한 뉴스 영상을 감독이 처음 봤다는 것은 사실일지 모르나, 모두가 보지 못한 희귀 영상이며 첫 공개라는 주장은 거짓이다. 이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쓴 언론사들의 보도는 ‘가짜뉴스’다.
“희생자 중심으로 역사를 봐서는 안 된다. 가장 선전선동이 쉽기 때문이다”라는 이유로 영화는 이승만의 민간인 학살은 영화의 소재로 선택하지 않았다. 보도연맹 사건,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사건, 문경 양민 학살 사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제주 섯알오름 학살 사건, 함평 양민 학살 사건, 대전형무소 학살, 청주형무소 학살, 대구형무소 학살 사건 등 이승만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십, 수백만 명의 학살을 지시하거나 방조, 묵인했다. 말단 군경들이 스스로 한 짓이 아니다. 이승만은 여순사건 진압 관련 담화문에서 ‘어린아이들이 앞잡이가 되어 총과 다른 군기를 가지고 살인을 충돌하고 여학생들이 심오하게 살해, 파괴를 일삼으니… 남녀 아동까지라도 일일이 조사해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라’라고 지시했다.
선택적 사실의 열거로 영화는 이승만 정부에서 일어난 수많은 민간인 학살, 정적들의 살해에 대해 군 통수권자이며 대통령인 이승만은 아무런 책임과 관계가 없게 만들었다. 남한 단독 선거, 1951년 개헌, 사사오입 개헌도 민주주의 국가 건국을 위한 숭고한 과정으로 둔갑했다. 이승만을 ‘불의’로 규정한 헌법도 잘못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자칭 건국 1세대들이 이승만과 더불어 칭송하는 박정희조차도 ‘이승만 노인은 눈이 어두운 독재자다. 지난날 이승만씨가 꾸며 놓았던 자유당이야말로 자기 파만의 수지 타산을 제일로 치는 정당의 본보기였으며, 세계 선거 역사 가운데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부정과 불법의 흉계를 꾸미고 이를 국민에게 강요했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 유튜브 역사 강사는 ‘편향된 영화니 보지 말라’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것은 자기 마음이라며 영화를 보고 각자 평가하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를 보고 안 보고는 각자의 마음이다. 그런데 보고 나면 9000원이라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니 한 가지 기대되는 것이 있다. 이승만의 여러 공들이 분명 존재함에도 역사적 평가는 냉혹하다. 집권 2년 반 동안 공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정부에 대해서는 어떤 역사적 평가가 내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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