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앞두고 어김없이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벌어졌다. 제법 알려진 언론인 여럿이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미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인지, 그렇게 큰 화제가 되지도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덤덤하게 넘어가도 되는 걸까?
공직선거법은 정식으로 등록된 언론사에서 편집, 제작, 취재, 보도 업무를 하던 언론인의 출마를 공직자와 같이 규제한다. 지역구 후보가 되려면 선거일 90일 전까지, 비례대표 후보가 되려면 30일 전까지 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 규제는 원래 공무원과 공공기관 고위직이 대상이다. 그런데 대부분 순수 민간인인 언론인은 직급 제한도 없이 규제를 받는다. 방송법에 따른 방송사, 신문법에 따른 신문사와 인터넷신문사 등이 모두 해당된다. 윤리강령의 유무는 상관이 없다.
언론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참정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차적으로는 언론인이 보도 활동을 선거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해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뒤집어 보면, 언론인이 정치적 목표를 위해 언론 활동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출마 결심을 굳힌 언론인이 이를 숨긴 채 취재와 보도를 하는 것은 이해충돌 상황이다. 그런 이가 정치 쟁점을 공정하게 다뤘을 거라고 믿어도 될까? 자기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정치 문제가 아니라도 그렇다. 취재와 보도를 정치권과 유권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당사자가 욕 한번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논란이 되면 결국 전체 언론인들의 공정성이 의심받는다. 뉴스 진행으로 얼굴을 알린 앵커들이 그런 인지도를 정치적 자산으로 챙겨가는 만큼 남은 동료들은 불신이라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언론사도 마찬가지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부담은 사회화하는 부조리한 상황이다.
한국 사회의 유별난 정파성이 언론계에 특히 강한 영향을 미치는 데는 수많은 선배 언론인들이 원칙 없이 정치권으로 달려간 영향도 크다. 더구나 그렇게 정치권으로 간 전직 언론인들이 언론에 대한 폄하와 공격, 정파적 길들이기에 앞장선 부정적인 전통도 있다. 평생 해오던 일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조차 없었음을 드러내는 일이지만 자신을 발탁해준 곳에서만 인정받으면 그만이라는 행태는 지금도 반복된다.
현실적으로 이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언론사별로 이 문제를 다루는 기준은 제각각이다. 규정이 아예 없는 곳부터 매우 엄격한 곳까지 다양해서 언론인들도 정확하게 무엇이 기준인지 잘 모른다. 따라서 먼저 언론계 공동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언론단체들이 누구나 납득할 만한 공동의 기준을 만들고, 언론사들이 참여하면 된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기준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기준은 실제로 지킬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강하다고 좋은 게 아니다. ‘앵커 그만두고 3년간 출마 제한’ 같은 과도한 규정은 도움이 안 된다. 법정 기준인 3개월보다는 엄격하되 과도하지도 않게 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다만 출마 시점이 아니라 공개적인 정치 활동 시점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선거일은 멀었어도 오늘까지 뉴스를 보도하던 사람이 바로 내일 특정 정당 점퍼를 입고 정치활동을 한다면 언론의 공정성과 신뢰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언론 활동과 정치 활동의 간격은 6개월 정도가 적정하지 않을까 싶다. 언론의 정치적 독립성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 차원에서라도 이 정도의 자제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런 기준을 언론계가 공동으로 채택한다면 정치에 뜻을 둔 언론인은 누구나 이를 준수함으로써 폴리널리스트 논란을 피할 수 있다.
모호한 기준 아래 선거 때마다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반복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언론 사업자단체들과 현업인 단체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폴리널리스트 논란을 끊겠다는 의지를 갖고 현실성 있는 공동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