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지우려는 KBS... '총선 영향' 이유로 다큐 연기 지시
이제원 제작1본부장 "총선 영향 줄 수 있다"
세월호 10주기 방송 연기 결정에 내부 반발 확산
KBS PD협회 "심각한 제작 자율성 침해"
‘4·10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KBS 제작본부장이 오는 4월18일 방영 예정이던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를 일방적으로 방송 연기 결정하고, 프로그램 내용마저 다른 재난들과 엮으라고 지시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심각한 제작 자율성 침해” “공영방송의 추락”이라는 내부 구성원의 비판이 잇따라 나온다.
지난해 제작본부 차원의 결정으로 KBS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은 ‘세월호 10주기 방송-바람이 되어 살아낼게’(가제)를 오는 4월18일 방영 예정으로 제작하고 있었다. “참사 후 10년을 보낸 단원고 생존자를 중심으로 한 평범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내용이었다.
촬영은 40% 정도 이뤄진 상황. 지난달 30일 임명된 이제원 제작1본부장은 부임한지 일주일여 만에 간부들을 긴급 소집해 제작 일정을 변경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제작진은 팀장, 부장, 국장과 함께 본부장에 부당함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이제원 본부장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 6월 이후 연기를 지난 15일 통보했다.
제작진은 이 과정서 “총선은 4월10일이고 방송은 8일 뒤인 4월18일인데 무슨 영향을 줄 수 있냐”고 질의하자 이제원 본부장은 “나는 총선 전후로 한두 달은 영향권이라고 본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큐 인사이트 제작진인 이인건 PD는 15일 KBS PD협회 협회원에 보낸 방송 지연 사태의 과정을 설명한 입장문에서 “이 소식을 두 달여 동안 저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세월호 생존자와 현장에서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 이분들은 이와 같은 KBS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 PD는 이어 “4월16일은 세월호 10주기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방송사가 이를 다룰 것이나 KBS 제작본부는 이 시기에 방송을 내보낼 수 없게 됐다”며 “4월18일로 제작된 방송을 그냥 8월에 방송할 수는 없다. 이는 저와 같이 일선에서 제작하는 작가와 카메라감독도 일치한 의견”이라고 전했다.
제작본부장의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연기 방침에 KBS PD협회, 언론노조 KBS본부 등 내부의 반발이 나온다. 16일 KBS PD협회는 성명에서 “이제원 본부장의 이번 결정은 명백한 제작 자율성 침해 행위이자 해사 행위”라며 “예정된 일정대로 세월호 10주기 방송 제작이 진행될 수 있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KBS PD협회는 “제작 중인 프로그램에는 세월호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자 정치인이나 유가족 대표, 혹은 세월호 관련 단체의 구성은 제하고, 참사를 겪은 평범한 당사자들의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내용으로 제작될 예정이었다”며 “세월호 아이템을 민감한 아이템으로 판단하는 본부장이야말로 정치적 편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어 “본부장의 판단은 KBS에 대한 시청자들의 외면은 물론, 공영방송의 추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시사교양 구역도 이날 성명을 내어 “무엇보다 세월호 10주기 방송이 총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부터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이미 10년이 지난 사안인데다, 학생들 수백 명이 숨진 대참사”라며 “국민의 생명에 대한 방송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는 자체가 이 사안을 정파적으로 바라본다는 반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제작본부장의 생명 이슈를 바라보는 공감받기 어려운 시각, 시의성 등 제작에 대한 무지로 인해 우리 KBS 시사교양 PD들은 싸잡혀 모욕당하는 중”이라며 “도대체 박민 사장은 이런 인사를 제작1본부의 수장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오는 19일 KBS 본관 앞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규탄 및 저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로 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16일 성명에서 이제원 본부장이 “해당 다큐멘터리의 제작부터 본부노조가 개입한 것이고 제작자가 본부 공추위 간사”라고 주장한 것이 거짓이라며 “해당 다큐는 전임 임세형 제작본부장 시절 이미 시의성 아이템으로 4월 방영이 결정돼 있었던 다큐멘터리로 부장이 업무를 배정해 담당 PD가 제작을 맡았다”고 짚었다.
이어 “만약 세월호 10주기 방송 제작이 불발된다면 이 모든 책임은 이제원 본부장이 오롯이 져야 할 것”이라며 “나아가 깜냥 안 되는 사람을 제작본부장으로 앉힌 낙하산 박 사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박지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