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자녀가 특수교사에게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 부모는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후 부모가 증거 수집을 위해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서 수업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법정에선 2시간 40분에 달하는 녹음파일이 전체 재생됐다. 수업시간을 녹음했다던 파일 대부분은 무음이었고, 기소된 사건 관련한 내용은 전체 다 합해 5분 남짓했다.
한 장애부모는 장시간 무음에 대해 지적하며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그러나 한 특수교사는 그 시간을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장애학생은 통합학급에서 발생한 다른 사건으로 특수학급에 2주간 분리조치된 상황이었다. 어떤 교사도 아침부터 하교 때까지 종일 수업하지 않는다. 특수교사는 특수학급으로 분리된 장애학생을 온종일 케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자신에게 정해진 수업 시수를 초과한 노동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 교사는 ‘무음’을 이러한 구조적 환경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음파일이 전체 재생되던 법정에서 사건이 발생한 특수학급의 학부모들을 만났다. 이들은 “발달장애아이는 단호하게 말해야 알아듣는다. 이것은 학대가 아니라 단호한 교육”이라며 기소된 특수교사를 옹호했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특수교사 공백이 생긴 후, 2022년 9월부터 2023년 말까지 특수교사가 7번 바뀌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려줬다. 이들은 “(특수교사의 잦은 교체는) 시스템 탓”이라고 말하면서도 학교와 교육청에 강하게 문제제기하는 것을 꺼렸다. 도리어 ‘특수교사를 신고한 부모가 문제’라며 해당 부모를 강하게 비난했다.
눈치챘겠지만, 이것은 이른바 ‘주호민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야기의 한 ‘단면’이다. 단면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문자 그대로 이는 전체의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이해관계자를 단순히 하면 ①주호민 측 ②특수교사 ③특수학급 내 다른 장애학생의 학부모로 정리할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이 사건은 다르게 읽힌다. 그러나 기사는 ‘주호민 vs 특수교사’라는 단편적인 대립항에 갇힌 내용만을 쏟아낸다. 그 프레임 안에서 문제시할 수 있는 것은 개인뿐이다. ‘장애자녀를 헌신적으로 돌봐준 특수교사를 고소한 갑질 학부모’ 혹은 ‘전문성이 결여된 채 장애학생을 학대한 특수교사’. 이러한 기사는 독자 자신이 감정 이입하기에 수월한 편에 서서 그의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갈등은 봉합할 수 없을 수준으로 첨예해졌다.
이러한 기사가 양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의 사건에 n명의 이해관계자가 있으면 n개의 사실이 존재한다. 하나의 사실은 다양한 겹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아주 단순하게 사실1, 사실2, 사실3이라고 치자. 어떤 사실을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러티브가 구성된다. 사실1만 취재한 기자와 사실1·2·3을 취재하고 검증한 기자가 동일한 양질의 기사를 써낼 것이라고 믿기란 어렵다. 물론 다양한 사실들을 둘러싼 맥락을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내용은 한 차원 달라진다.
기자는 취재를 시작할 때, 첨예하게 드러난 현상에 대해 자기만의 문제 설정을 하고 현장에 간다. 기자는 자신이 초기에 설정한 문제설정값이 기사의 ‘야마’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설’임을 기억해야 한다. 취재는 가설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자신의 가설에 균열을 내는 ‘다른 사실’이 발견됐을 때 이를 배척한다면 취재는 퍼즐 맞추기가 된다. 천 개의 조각이 있어도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때로 문제를 개인화하고 단순화할수록 글은 명쾌해진다. 그러나 명쾌한 글이 언제나 좋은 글인가. 글은 퍼즐 맞추기가 아니라 레고를 쌓는 일이다. 혹자는 이러한 글쓰기의 태도가 “열려있는 힘을 갖는 것”이며 “생성하는 힘”이라고 했다.
선고 기일은 2월1일이다. 법정에 선 사건은 피·가해를 가를 수밖에 없겠으나, 법정 밖에서 쓰는 기사는 피·가해의 이분법을 넘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 사실들을 둘러싼 맥락을 읽어내며 구조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문제설정값이 달라지면 해결 방법도 다르게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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