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보도를 한 언론에 어떤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까. 언론이나 당사자 각 입장이 있겠지만 현실에선 법원이 주요 한 축을 차지한다. 박사학위(국민대) 논문 <허위보도에 대한 언론의 책임성 연구>(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교육본부장)는 이와 관련한 우리 사법부의 입장을 보여주는 연구로 참고할만하다.
20년간 언론중재위에서 근무한 현직 변호사로서 저자는 허위보도이면서도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판결 67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법원이 언론의 자유를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 종합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언론의 진실보도의무를 전제로 허위보도를 면책해왔다는 점을 확인했다. 여기서 진실보도의무는 객관주의 저널리즘 규범이 아니라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검증할 의무로 여겨졌는데 ‘수사당국의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보도하거나’, ‘제3자의 말을 전하는 식으로 작성해도’ 기자의 진실확인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공인·공적 사안에 대한 의혹제기의 경우 최소한의 정황 혹은 근거에 대한 확인의무 정도를 요구하는 판단도 엿보였다.
허위보도 면책판결 사유로는 상당성 법리를 우선으로, 악의성 법리가 이를 보완하며 주된 근거로 쓰이고 있었다. 상당성 판단엔 ‘근거자료의 신빙성’ 여부가 중요했고, 악의성 법리가 적용된 면책판결은 공익성은 높지만 뒷받침할 근거가 부실한 상태에서 의제화 역할을 수행한 사례들이었다. 큰 틀에서 보면 사건 전말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시점, 언론이 공인의 공적 관심사에 대한 의혹제기를 하고 이후 허위로 드러나도 법원은 진실로 믿을 사유가 있었고 악의적이지 않으면 책임을 묻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내려왔다.
최근 허위보도 관련 엄벌주의 흐름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연구자는 “공인 내지 공적 사안에 대한 정당한 비판보도가 위축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적시했다. 신중한 사실확인을 재차 강조하며 그는 “허위보도였어도 면책된 사례들은 허위보도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언론에게는 일종의 ‘최후의 안전장치’와 같이 여겨질 것이며 사회적 관심사가 높지만,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해당 사안을 사회적 의제로 제시할 것인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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