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9월 취임한 이후 3개월 만에 ‘공정성’을 근거로 이뤄진 방송심의가 전년 한 해보다 8배 많아졌다. 이에 따라 법정 제재 건수도 4배 이상 늘었다. 공정성은 다른 심의 기준보다 자의적으로 적용할 위험이 커 언론을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자협회보가 방심위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된 방송심의 의결 현황을 조사한 결과 류희림 위원장이 취임한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동안 ‘공정성’을 근거로 한 심의가 32건으로 나타났다. 전년인 2022년 한 해 동안 이뤄진 4건의 8배였다. 2021년은 3건이었다. 조사 대상은 지상파 TV와 라디오,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세 곳으로, 세부현황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12월분은 제외했다.
공정성을 근거로 심의된 방송 32건은 모두 정부나 여당에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인용해 보도하거나 국민건강보험 개편, 화물연대 파업과 업무개시 명령, MBC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 김건희 여사에 대한 의전 등을 비판한 방송이 심의됐다.
중징계도 크게 늘었다. 과징금과 관계자 징계, 경고, 주의 등 법정 제재는 지난해 상반기 5건에 불과했지만 류 위원장이 취임한 하반기에 36건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15건이 공정성을 근거로 한 심의였다.
다른 심의 근거인 ‘대담·토론프로그램’의 공정성까지 고려하면 무더기 중징계에 공정성 항목이 영향을 준 현상은 더 뚜렷해진다. 라디오방송의 대담과 토론프로그램 진행자가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11건이 심의됐고, 절반인 5건이 주의를 받았다. 제재는 눈에 띄게 늘어난 반면 ‘문제없음’ 의결은 상반기 44건, 하반기 49건으로 비슷했다.
방송 내용이 사실에 어긋나는지 판단해 기준이 비교적 뚜렷한 ‘객관성’과 달리 균형성을 뜻하는 공정성은 자의적으로 심의하기 쉬운 근거가 된다. 대립하는 두 의견을 각각 어느 정도 반영해야 균형이 충분한지는 주관적 평가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10월16일 전체회의에서 여권 김우석 위원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인용보도한 MBC의 하루치 리포트 4개를 합친 분량 10분 중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의 입장은 1분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냥 숫자만 봐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편향된다”며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의 녹취록을 인용한 방송 23건이 균형이 충분하지 않다며 심의됐다.
이렇다 보니 공정성을 심의 기준에서 아예 제외하자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미국은 1987년 언론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방송심의의 ‘공정성 원칙’을 폐기했다. 모호한 기준 때문에 자기검열을 해 정치적 쟁점 보도는 피하는 등 언론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방심위는 명목상 민간기구지만 방심위 제재는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사를 재허가하거나 재승인 심사할 때 감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 정책연구위원을 지낸 이남표 용인대 객원교수는 “애초 방심위 설치 목적이 방통위법에 명시된 ‘방송 내용의 공공성과 공정성 보장’”이라며 당장 공정성을 심의 기준에서 제외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교수는 “공정성에 대해서는 상징적 심의만 하고 행정처분으로는 이어지지 않게 하는 등 부분적 제도 개선으로 과잉심의를 해소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방송은 당연히 공정성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걸 심의라는 수단으로 이루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주요 정당들이 방송이 불공정하다며 심의 민원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심의 요구는 계속 많아지고 있어 공정성 심의 논란도 계속될 수 있다. 광고 부문을 제외하고 지난해 이뤄진 방송심의는 384건, 2022년에는 253건, 2021년은 123건으로 최근 3년 사이 3배가량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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