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만큼 국밥 한 그릇이 딱 떨어지는 계절이 있을까. 하얀 김이 폴폴 올라오는 뚝배기만 놓고 앉아도 시렸던 몸에 온기가 돈다. 거기에 뜨거운 국물 한술은 깊은 속까지 훅 데워준다.
제주 안성식당은 따끈한 국밥을 마음 넉넉히 내주는 곳이다. 푸짐함이 확실히 남다르다. 숟가락을 휘저으면 국물만큼 건더기가 걸려든다. 주메뉴는 고기국밥, 순대국밥, 막창국밥 등이다.
식당은 여행객도 많이 찾는 동문재래시장에 자리한다. 시장 골목 지도로는 ‘먹자 2로’에 있다.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 안, 그것도 20여명이 앉으면 꽉 찰 만한 좁은 가게이지만 시끌벅적하진 않다. 아는 사람만 알아서 찾는 곳처럼 조용히 맛으로 이야기한다.
“새우젓 넣어 드세요.” 펄펄 끓는 국물이 넘칠 듯한 순대국밥이 나올 때면 듣게 되는 ‘국밥 먹는 법’이다. 때로는 심심함 그대로가 좋아 곰탕을 먹을 때도 소금 한 톨 치지 않지만, 이 집 새우젓만은 빼놓지 않는다. 안성식당 국밥만의 ‘치트키’ 같은 존재다.
희멀건 국물이 있는 보통의 새우젓이 아니다.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 벌겋게 만든 무침 같다. 젓가락에 콕 찍어 맛봐도 특별한 건 없는데, 신기하게 국밥에 들어가는 순간 맛을 확 잡아 끌어올린다. 밋밋한 첫맛은 별안간 잊힌다.
순대국밥의 구성은 단출하지만 허전하지 않다. 국밥 하나만 시켜도 순대와 고기, 내장 등이 부족함 없이 나온다. 잡내를 잘 잡아, 먹는 내내 거슬리지도 않는다.
들깨와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나오는 국물은 묵직하기보다 깔끔한 맛이다. 기름이 둥둥 뜨지 않아 마지막 한입까지 질리지 않는다. 딱 있어야 할 것만 갖춘 반찬과의 조화도 좋다. 담근 지 얼마 안 된 깍두기는 아삭함을 더하고, 알싸한 갓김치는 입안을 정리해 준다.
그릇을 싹 비우고 고개를 드니 식당 벽에 붙은 두 글자와 눈이 마주쳤다. ‘하심’(下心). 배 속이 두둑해져 돌아가는 길에는 세상 모든 일에 관대해진다.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새해에 마음가짐까지 다시 새긴다. 고기국밥·순대국밥 모두 9000원.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접수: 이메일 taste@journalist.or.kr(기자 본인 소속·연락처, 소개할 음식 사진 1장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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