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통해 민원을 제기하고 위원회 심의절차를 진행한 ‘청부민원’ 의혹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의혹 가리기에 급급하고 있다. 해명이나 사과가 우선돼야 하는데도 이를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라는 식으로 물타기 하고 제보자 색출에 나서더니 이 문제를 다루려는 방심위 회의를 무산시키는 방식으로 ‘셀프 방탄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후안무치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다.
류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하자마자 이른바 가짜뉴스 심의를 명분으로 비판적 언론 길들이기 선봉장을 자처했다. 방심위 존립목적은 방송의 내용이 인권존중, 양성평등 등 민주적 가치를 잘 준수했는지를 심의하는 것인데도, 류희림호 방심위는 마치 심의를 권력 비리 취재나 정권 비판 언론에 대한 사후 검열처럼 활용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정권의 코드에 맞춘 심의로 언론계 질타가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심의과정에서 무리수를 동원한 정황이 드러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청부민원 의혹은 지난해 9월 류희림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 10여명을 동원해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을 인용보도한 방송사들을 심의해달라고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내용의 내부 고발이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되면서 알려졌다. 방심위는 민원이 제기되자마자 심의를 진행해 KBS, YTN, MBC 등의 방송사에 과징금 부과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인용보도는 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전례도 무시했다.
정치적 독립성이란 기관의 존립근거를 무시한 것도 문제지만, 청부민원 의혹이라는 절차적 문제가 제기되자 그는 이를 ‘민원인 개인정보를 유출한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범죄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 내부 고발자는 부정한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위원장의 비위 의심 행위를 고발한 전형적인 공익제보자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그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은 물론 특별감사반을 만들어 직원 ‘기강잡기’에 나섰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피해 민원인들이야말로 ‘진정한 공익제보자’들”이라고까지 추켜세웠으니 황당할 따름이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류 위원장은 지난 3일 청부민원 의혹을 논의하기 위해 야권 위원들이 소집한 방심위 임시회의를 여권 위원들과 함께 불참하는 방법으로 무산시켰다. 8일 열린 올해 첫 정기회의에서는 청부민원 의혹 제기에 대한 대응이 안건으로 올라오자 비공개로 진행하자는 등 억지주장을 하며 일방적 정회를 선포하기도 했다. 그는 민원인의 명예훼손이 우려된다고 주장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야당은 내부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 감사를 지시한 류 위원장을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인 중대한 범법행위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장에서 당시 김 후보자도 사실관계가 맞다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고 한 만큼 검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다. 방심위를 비판 언론 옥죄기 수단으로 만든 것만으로도 류 위원장은 더 이상 자리를 지킬 명분이 없다. 하루속히 물러나는 것이 남은 명예를 지키는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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