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가 20년 기자 생활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됐죠"

[인터뷰] 책 '태도의 언어' 출간한 김지은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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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얻어 일을 잠시 멈추고서야 문득 떠올랐다. 다시 태어나도 기자를 하고 싶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는데, 몸을 해칠 정도로 일에 몰두한 뒤에 남은 게 뭘까 싶었다.


“기사가 남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기사가 내 글인가? 아니죠. 기사는 사회에 관한 글이잖아요. 회의가 들더라고요. 복직할 때쯤 ‘아, 태도가 남았네’ 생각이 들었어요.”

김지은 한국일보 기자. 김 기자는 지난해 연말 버티컬콘텐츠 팀장을 맡았다. 새로운 콘텐츠 사업을 구상 중이지만 인터뷰 기사는 힘 닿는 대로 써볼 생각이다. /한국일보 제공


롱폼 인터뷰 ‘삶도’로 이름을 알린 김지은 한국일보 기자가 지난달 ‘태도의 언어’를 펴냈다. 인터뷰를 엮은 ‘언니들이 있다’와 ‘엄마들이 있다’, 자녀가 엄마를 인터뷰할 수 있게 돕는 워크북 ‘디어 마더’에 이은 네 번째 책이지만 에세이로는 첫 번째다.


새 책에는 김 기자가 수없는 인터뷰를 거치면서 깨달은 삶의 중요한 태도가 담겼다. 자신을 성장시킨 건 인터뷰이들이라고 말하는 그를 지난 5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제가 이 책을 표현할 때 이렇게 얘기해요. ‘기자 김지은이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모은 책이다’ 이렇게요.” 그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 제목을 빌려 설명했다. 사람을 만나 소통하는 게 일인 기자 생활 20년 동안 배운 건 타자를 빠르게 치거나 밤낮없이 뻗치기하는 능력 같은 건 아니었다.


김혜수 배우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차준환 피겨스케이팅 선수와 손석희 전 앵커 등이 가르쳐준 다정하거나, 예의에 애정이 어려 있거나, 오기와 자존심으로 자기를 지키거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들을 김 기자는 모두 잡아채 책에 섬세하게 묘사했다.


특히 김혜수 배우는 김지은 기자에게 태도의 힘과 중요성을 알게 해 준, 가장 영향이 컸던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용기와 자존감을 주는 따뜻함은 2010년 그를 처음 만난 뒤 14년 동안 온기를 잃지 않았다. ‘태도의 언어’는 김혜수 배우가 추천사를 써준 유일한 책이다.


김지은 기자는 인터뷰 기사 자체에 대한 애착도 크다. 그가 삶의 길을 묻는 ‘삶도’ 인터뷰 기사를 쓰기 시작한 건 2018년부터다. 한 해 전 국정농단 국면에서 길을 잃은 듯했다. 20년 넘는 기자 생활의 절반 가까이 정치부에서 보수정당을 출입했지만 ‘정치인 박근혜’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자책감과 회의가 들었다.


무슨 기사를 쓰든 독자 반응은 비난이었다. 댓글창에는 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때 공손히 손을 모으고 경청하는 기자들 사진이나 앞뒤 설명 없이 ‘기레기’ 세 글자만 올라오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회의가 드는 시기를 어떻게 견뎠을까 궁금해졌어요. 그런 기사라면 읽는 사람에게 혜안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인터뷰 기사는 길게 남을 만한 무언가이기도 했다. “이전에도 인터뷰 기사를 수없이 썼고 조회수 많고 반응이 뜨거웠던 적도 많았지만 다시 읽고 싶은 기사는 없더라고요. 이슈 중심의 인터뷰였으니까요.” 이슈가 사그라들면 함께 사라질 기사가 아니라 두고두고 읽어볼 만한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의 인터뷰는 짧아도 1만자다. 길 때는 A4 15쪽 분량인 1만8000자 정도를 쓴다. 못해도 서너 시간, 필요하면 9시간도 인터뷰한다.


댓글도 달라졌다. 독자는 인터뷰이를 통해 자기 삶을 돌아봤다. “저도 댓글을 보고 알았어요. 그냥 ‘잘 읽었어요’가 아니라 각자 삶을 투영해서 댓글을 쓰는 거예요.” 독자들은 같은 기사를 봐도 마음에 남는 구절이 다른 듯했다. 그만큼 삶이 다양했다. 덕분에 소중한 댓글에 대댓글을 달아 소통하는 매우 드문 기자가 됐다. 댓글은 인터뷰이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동시에 기자에게 쓴 글이라 믿기 때문이다.


김 기자가 ‘태도의 언어’를 써내며 가진 기대도 같다. 독자가 자기 삶과 태도를 돌아보고 기꺼이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기자 후배들을 자주 떠올렸다.


“기자를 하면서 자신과 수없이 싸우거든요. 나는 왜 이거밖에 못 하지 싶어 열패감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시간이 지금의 기자 아무개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자 자산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지금 하는 그 일의 가치를 후배들이 귀하게 돌아보면 좋겠어요.”


김 기자는 아직 독자와 직접 대화하지 못했다. 26일에는 서울시 은평구 구립도서관인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처음으로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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