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도 많은 흉흉한 뉴스가 있었다. 그런 뉴스가 세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지적하고 비판함으로써 여길 더 낫게 만들려는 시도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그 암울한 소식들이 우릴 불가피하게 지치게 하고 나 아닌 남을, 우리를, 서로 불신하게 만든 측면도 사실일 것이다. 2024년 새해를 지난해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 뉴스들을 소개하며 시작해보려 한다. 이 시기만이라도 우리가 우리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고 살아갈 증거들을 톺아보자는 취지다. 여전히 해결돼야 할 사안이 많고 올해도 험악한 뉴스들이 많을 상황에서 이는 분명 기만이지만 위악은 아니라 변명해 본다. 오히려 기만조차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라는 게 온당한지, 아니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은 때니까. 결국 새해라서 하는 얘기다. 올해엔 이런 훈훈한 뉴스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불가능한 바람을 담아서. 새해니까, 다시 시작이니까.
#어린이는 어른을 놀라게 하지만 이 아빠처럼 놀란 일은 드물다. 지난해 6월 한 아빠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연이 여러 매체에서 기사(<“둘째도 데려가게” 회사 임원의 깜짝전화…아빠의 ‘웃픈 야유회’>)가 됐다. 아이가 넷이라 회사 야유회에 큰 아이만 데려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전무님이 전화해 둘째도 데려가라고 했다. 알고 보니 11살 딸이 상사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 “아, 제가 ○○○ 딸인데요.” “어어.” “아빠가 오늘 야유회에 간대요. 근데 제가 간다고 졸랐는데 아빠가 오빠만 데려간다고 계속 저를 놀렸어요.” “하하하하하 잠깐만. 아이구 그래서?” “오빠도 못 가게 해주고 아빠도 못 가게 해주세요.” “그럼 ○○가 가면 되겠네.” “아, 그래요?(화색이 도는 목소리)” “어, 하하하.” “히히.” “○○가 가면 되잖아. 그치?” “네!” “내가 아빠한테 얘기할게.” 아빠가 잘 때 휴대전화를 열어 사장님, 전무님, 차장님 연락처를 적어놓고 까먹을까봐 외웠다고 한다. 감사하다고 다시 전화한다는 걸 말렸고, 전무님이 허락을 안 하면 사장님에게 연락하려 했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다시 올린 글엔 야유회를 즐겁게 보내고 왔다는 소식이 담겼다. 아이는 진지했고 아빠는 놀랐지만 우린 덕분에 미소지었다.
#문제투성이 사회가 이만큼 유지되는 덴 시민들 헌신이 크다. 지난해 8월 폭우가 내리던 날, 비를 맞으며 손수레를 미는 노인에게 우산을 씌워준 시민의 모습(<내 어깨는 다 젖어도>)이 카메라에 잡혔다. 우산은 작았고 1km를 함께 걷는 동안 시민도 다 젖고 말았다. 노인은 이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가 돈도 뽑아 건넸다는 사실(<폐지줍는 노인 우산 씌워준 女…현금까지 뽑아줬다>)도 전했다. 해당 여성은 해야될 걸 했을 뿐이라며 언론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지난해 9월엔 주말 저녁 술에 취해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60대 남성을 주변 시민들이 구하는 일(<[단독]철로에 떨어진 취객 목숨 구하고, 홀연히 자리 뜬 ‘시민 어벤져스’>)도 있었다. 서울지하철 1호선 도봉산역에서 한 승객이 선로로 떨어진 직후 목격한 남성 2인이 지체 없이 뛰어내렸고, 주변 여성 2인과 다른 남성 1인이 해당 승강장 쪽으로 모여 취객을 밀고 끌었다. 경찰·소방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취객은 안전한 상태였고 시민 5명은 홀연 사라진 채였다. 지난해 6월엔 서울 강서구 공항동 한 오피스텔에서 새벽 시간 화재가 발생했고 입주민이던 한 청년이 온 이웃을 깨워 피해를 최소화한 일(<새벽 오피스텔 불…청년이 맨발로 이웃 깨워 56명 살렸다>)도 있었다. 중식당에서 일하던 29세 청년은 귀중품을 챙겨 대피하는 대신 맨발로 뛰어다니며 소방인력 도착까지 21개 가구를 대피시켰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누구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7월 입원한 아이를 마음을 다해 돌보는 간호사의 모습(<소아중환자실 간호사가 아기에게 건넨 말…엄마는 오열했다>)이 화제가 됐다. 간이식 수술을 받은 생후 21개월 아이의 엄마는 코로나19 여파로 면회를 할 수 없었고, 담당 간호사에게 전한 휴대폰 공기계를 통해 사진, 동영상을 받던 처지였다. 어느 날 베이비캠이 실수로 켜지며 간호사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귀엽다 진짜.” “엄마랑 아빠가 ○○ 빨리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대.” “예뻐.” “사랑해.” 엄마는 영상을 보며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 대다수 존경스러운 의료진들이 사명감으로 몸을 갈아 넣어가며 일하는 모습에 감사하고 싶었다고 글을 적은 이유를 밝혔다. 기지를 발휘해 범인을 잡은 경찰, 비번 중 시민을 구조한 소방관, 휴가 중 선행을 보인 군인 등의 헌신을 다룬 뉴스는 부지기수다. 특정 직업군을 넘어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베푼 선의의 무게를 돌아본다. 지난해 5월 <“임신 중인데 너무 배고파서”…외상 부탁한 미혼모 채용한 분식점 사장님> 기사에서 ‘거짓말이어도 보내주자’란 마음이 실제 만남이 되고 아르바이트 채용까지 이어진 사연처럼 말이다.
#내 목숨을 남을 살리는 데 쓴 가장 숭고한 희생을 다시 한번 기억해보려 한다. 이은애(34), 문미선(43), 이예원(15), 신우호(30), 조미영(47), 김건혜(27), 이관춘(56), 이지현(24), 김녹토(24), 고민수(54), 홍남선(75), 박래영(26), 최종순(65), 구경호(28), 김상우(31), 이휘영(28), 강미옥(58), 정아영(4), 임영선(48), 이은미(57), 이주용(24), 권은영(51), 장태희(29), 이학준(18), 장영만(75), 이찬호(45), 길금자(67), 이동재(23), 김정애(53), 장천광(46), 김미경(42), 김원교(59), 김민규(38), 곽문섭(27), 이선주(52), 박수련(29), 김영위(65), 임종용(65), 한형귀(53), 노연지(33), 송무길(48), 윤광희(53), 송세윤(6), 박세진(59), 박수남(80), 40대 여성 A, 40대 남성 B, 31세의 C, 11살의 D 등이 지난해 장기기증 후 세상을 떠났고, 뉴스가 됐다. 각각 2~7명에게 새 생명을 줬고, 일부는 인체조직 기증으로 100여명에게 삶의 희망을 전했다. ‘자장면을 좋아했고’, ‘도전을 즐긴’, ‘마법사가 되고 싶었던’ 누군가의 아들과 딸, ‘늘상 든든했고’ ‘죄송스러운 마음만 컸던’ 엄마 아빠와 갑작스레 이별하며 유가족이 쉽지 않은 결단을 했다. 기증자의 뜻, 고인의 흔적을 남기고픈 소망, 더 큰 가치를 향한 마음이 결국 여기 남았다는 점에서 새해의 시간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