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련 의혹을 보도했다가 고소·고발을 당하는 기자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 늘고 있다. 대통령실을 비롯해 정부, 정당, 시민단체까지 나서 적극적으로 기자들을 고발하는 모양새다. 고발 취지는 대개 비슷하다. 기자들이 취재해 내놓은 기사가 대통령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취재 상황에 따라 공동주거침입, 위계공무집행방해를 덧붙이고 정정보도, 손해배상도 청구하는 상황이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 역시 기자들을 수차례 조사하고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다.
기자협회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선후보 시절을 포함해 윤석열 대통령 관련 의혹 보도로 고소·고발당한 언론사는 기자협회 회원사로 한정할 때 지금까지 8곳이다. 고소·고발 시점으로만 보면 UPI뉴스가 지난 2021년 11월로 가장 앞섰는데, 기자 2명이 당시 윤석열 대선후보의 40년 지기 친구로 알려진 황하영 동부산업 대표를 취재했다가 회사 직원으로부터 공동주거침입으로 고소를 당했다. 황 대표도 1년여 후 주거침입과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이듬해인 2022년엔 한겨레신문과 MBC가 국민의힘 등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한겨레신문은 대통령 관저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가 개입했단 의혹을 제기했다가 취재 기자가 누군가에게 고발을 당했고, MBC는 윤 대통령 미국 순방 당시 비속어 논란을 최초 보도했다는 이유로 국민의힘과 서울시의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당했다. 또 3개월여 뒤엔 외교부가 이 보도를 두고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해 “황당한 소송”이란 비판을 사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2023년엔 특히나 기자 고소·고발 건이 많았는데, 대통령 관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역술인 ‘천공’이 개입했단 의혹을 보도한 뉴스토마토와 한국일보 기자들이 대통령실로부터 고발을 당해 언론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또 하반기엔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 당시 대검 중수부가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들이 대거 고소·고발을 당하고 압수수색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검찰은 뉴스타파·JTBC 본사 등을 시작으로 6번에 걸쳐 언론사와 기자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이었던 한 기자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 주거지를 압수수색하는 건 처음 봤다”며 “아예 예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이런 행태에 경각심을 느끼지 않는 작금의 상황이 더 신기할 뿐”이라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더 있다. 고소·고발의 화살이 언론사나 사장, 편집국장이 아니라 기자 개인에게로 향했다는 점이다. 본보가 조사한 사례 9건 중 7건이 기자 개인에게만 고소·고발을 한 사례였다. 잇따르는 수사, 조사, 재판으로 기자에게 부담을 가하고 취재를 위축시키기 위해서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혐의에 비해 경찰과 검찰이 과도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한 언론사 법무팀 관계자는 “지금까지 5번 넘게 의견서를 내고 고의성이 없다, 위법성 조각되는 사유가 있다며 계속 수사기관에 설명했다”며 “충분히 입증됐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여러 이유를 대면서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수사를 받고 있는 다른 한 기자도 “빨리 결론을 내려주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 뿐”이라며 “기자들이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보도했던 게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러는 것 같다. 괴롭히려고 일부러 시간을 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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